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나라가 편안한 날이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시끄러운 일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 불안의 원인을 찾아 올라가면 박근혜 대통령이 나타난다.

몇 달째 국정원이 정쟁의 대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정원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댓글을 달아 여론조작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화근이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도 “한국 국정원은 정치 앞잡이 보수파의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데 권력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 국정원 선거 개입은 보수의 대통령 만들기 전략의 첫 실험이라는 인상이다. 여기에 경찰이 협력하고 언론시장을 지배하는 조중동이 공조한다.

언론들, 정치적 꼼수 의심조차 안 해
선거를 이틀 앞둔 12월 16일, 마지막 후보 TV 토론이 끝난 다음, 밤 11시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지시했다.

경찰이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을 조사했는데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해 댓글을 올린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발표하기 위한 기자회견이었다. 선거를 이틀 앞두고 이런 발표를 하는 의도는 빤한 것이다. 국정원이 박근혜를 위해 인터넷에서 댓글을 쓰고 있다는 비난을 부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치적인 꼼수였다.

기자라면 이런 기자회견의 의도를 따지고 그것을 기사에 밝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국정원 여직원이 박근혜 후보를 위한 댓글을 쓴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경찰 발표를 크게 보도할 뿐 발표의 정치적 의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이 사실이 없는데도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쓴다고 고발했다며 비난하고 국정원 직원에 사과하라고 다그쳤다. 국정원 경찰 조중동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하나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발표 시점을 투표일 이틀 전으로 잡은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본다. 매카시 수법을 흉내 낸 것이다. 매카시는 항상 신문의 마감 시간 직전을 택해서 공산주의 용의자들의 명단을 발표했다. 기자나 해당자들에게 발표 내용을 확인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변명할 기회도 없이 억울하게 용공분자로 낙인찍혀 직장을 잃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된 피해자가 적지 않았다. 경찰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 증거가 없다는 것은 투표일 이틀 전에 발표하기로 결정한 것도 속셈은 비슷한 것이었다고 추리된다.

새 검찰총장이 취임하고 검찰이 수사를 맡으면서 경찰의 선거 전야에 갑자기 기자회견을 한 것이 박 후보와 가까운 김용판 서울청장의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아이디어라는 것이 드러났고 국정원 심리전단이 원세훈  원장님의 지시 말씀’에 따라 수 십개의 아이디로 인터넷에서 박근혜에게 유리한 댓글을, 문재인에게는 불리한 댓글을 올려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6월 13일 원세훈과 김용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3주 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당선됐다고 보는 대학생 시민단체들이 민주주의의 기본을 위반한 부정선거라며 전국 각지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8일 박 대통령은 마침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에 관해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실체를 정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 국정조사를 시작한 만큼 의혹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을 그쳐 달라“고 말했다. 일종의 휴전제의처럼 들린다. 그는 지난 6월 24일에도 이 문제에 언급,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다.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선거 부정문제 빨리 해결하는 게 상책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가 원했건 안 했건 국정원 댓글의 수혜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더구나 12월 16일의 심야 기자회견과 그 후의 언론보도가 그의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재판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국정원 선거 개입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그의 아킬레스건이다.

박 대통령 자신이 국정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밝히고 부정 선거 관련자는 엄벌하는 조치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박근혜 정권은 정권의 정당성(legitimacy)문제가 임기 내내 박 대통령을 따라다닐 것이다. 그러므로 선거 부정문제는 빨리 해결할수록 좋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부정한 선거로 당선된 지도자는 민주국가 지도자로서 지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미국의 조지 부시를 보라.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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