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 이것이 바로 꼼수다

장마가 시작됐다. 조금 있으면 어김없이 태풍이 몰려오는 등 자연재해가 반복될 것이다.
자연재해로 희생자와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하면, 우리 언론에는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였다는 비판이 뒤따를 것이다.

한국방송(KBS)은 국가 재난 주관방송사다. 그래서 공영방송이란 표현으로도 그 역할과 중요성을 충분히 표현 못 해 국가기관방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KBS가 대한민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그만큼 막중하기 때문이다. KBS는 여름철 재해 예방에 좀 더 신경 써야 할 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설에서 예상했듯이, KBS 사장은 두 가지 수신료 인상 요구안(4,300원과 4,800원)을 KBS 이사회에 제출했다.

KBS 경영진이 마치 채권자가 맡긴 돈을 요구하듯이 시청자와 국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인상요구안을 내놓은 것부터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누가 그런 권한을 부여했는가? 수신료는 ‘준조세’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인상 여부와 인상 액수 등을 심의, 결정해야 한다.

지금이 KBS가 수신료 인상에 매달려야 할 때라고 진정으로 생각하는가? 수신료 인상이 진정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하는가?

1987년 이후 우리나라 국회에 의안과 법안 처리와 관련 두 가지 불문율이 생겨났다. 어떤 경우에도 여야 합의를 통하지 않고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 두 가지 있는데, 헌법과 선거법 개정이 바로 그것이다.
헌법도 그렇지만, 특히 국회의원 선거법은 바로 다가오는 총선에 적용할 선거법을 선거 직전에 여야가 협상을 통해 합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해관계가 여야를 떠나 첨예하게 맞붙기 때문이다.

안건 처리 전망을 놓고 보면, TV 수신료 인상문제도 헌법이나 선거법 개정과 비슷한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신료 인상이 벌써 이뤄졌어야 옳다. KBS가 수신료 인상을 위해 시도한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사실상 ‘숙원사업’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신료 인상 타령을 해 왔기 때문이다.

다시 결론을 말한다. 지금은 수신료 인상을 시도할 때가 아니다. 설사 KBS 이사회가 인상요구안을 받아들여 방송통신위원회에 넘긴다 해도 갈 길이 첩첩산중이다.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로 안건이 넘어가면, 여야 사이에 수신료 인상에 대한 찬반 여부를 둘러싼 논의나 논쟁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KBS가 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내팽개치고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한 것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국회 의사당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될 것이다. 수신료 인상에 관한 여야합의는 꿈속에서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1981년부터 지금까지 30년 이상 줄곧 KBS에 몸담아 온 길환영 사장이 이런 사실과 배경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가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이는 것은 KBS 구성원들이 숙원사업처럼 생각하는 문제를 이용하여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을 주장하는 반대세력을 제어하거나 자신의 사내 입지를 굳히려는 꼼수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사회적 약자들은 날이 갈수록 삶이 궁핍해지다 못해 인생의 막다른 길로 내몰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방송’ KBS와 사장은 어떻게 하면 방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보살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