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국정원 부정선거에 대한 국정조사를 원한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이 어쩔 수없이 국정조사에 일단 동의했지만 속내는 여전히 국정조사에 반대 입장이다. 국정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특위위원 절반이 국정조사 반대파다. 대단한 아이러니다. 국정조사 자체에 반대하는 이들이 헌법 제61조에 명시돼 있는 국회 국정조사권을 행사하겠단다. 이런 모순이 또 어디 있겠는가.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가 시작된 지 2주가 지나도록 국정조사 계획서조차 채택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벌써 45일 일정의 1/3이 경과했지만, 단 한 발자국도 내 딛지 못한 채 여야간 공방만 계속되는 상황이다. 파행은 예견된 것이었다. 새누리당 특위위원들 때문이다. 말이 특위위원이지 사실은 ‘국정조사 무산 특별미션 팀’이나 다름없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국정 현안에 대한 의혹과 진상을 조사할 수있도록 만든 제도인 국정조사의 기본 정신을 여당이 무참하게 훼손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방해공작이 집요하다. 마치 자기 팀 선수들끼리 공을 돌리며 시간을 끄는 비겁한 축구경기를 보는 듯하다.

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도 문제다. 새누리당의 시간 끌기 꼼수에 끌려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언론까지 가세해 여당을 돕고 있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가장 많은 시민(2만 여명)이 모인 지난 주말의 서울광장 촛불집회를 기사화한 언론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 지상파 방송 3개사 모두 철저히 촛불을 외면했다.

제척문제로 국정조사 계획서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공전하는 동안 청와대도 움직였다. 국정조사에 쏠린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4대강 사업은 대운하 재추진”이라며 “국민을 속인 사기극이자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큰 일”이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 예산 날치기에 찬성표를 던졌던 청와대의 입에서 나온 얘기라고 믿어지지 않는 발언이었다.

과거에도 흐지부지된 국정조사가 많았다. 국정조사 제도가 도입된 1987년부터 현재까지 실시된 국정조사는 20건(진주의료원 국정조사 이전)으로, 이 가운데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보고서를 채택한 경우는 8건에 불과하다. ‘15대 총선 공정성’ ‘율곡사업 의혹’ ‘미국산 쇠고기 수입’ ‘쌀 직불금 의혹’ 등 여야의 정치적 대립이 심했던 국정조사는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조사 자체를 방해하고 무산시키기 위해 사생결단 식으로 나오는 다수당 특위위원의 횡포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게다가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의혹이 지난 대선의 공정성 시비다. 역대 어느 국정조사보다 여당의 태클이 강할 수밖에 없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긴장감과 위기의식이 새누리당 내에 팽배하다.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국정조사를 막아내려 할 것이다.

이번보다 정치적 강도나 비중이 훨썬 덜했던 국정조사도 파행으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전례에 비춰본다면 이번 국정조사 결과는 회의적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물타기에 적극 나설 것이고,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물고 늘어질 빌미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삼아 시간을 끌려고 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야당이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역부족일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밝혀지는 장소가 국회 국정조사장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결국 촛불이다. 촛불이 모여 큰 빛을 만들어 진실을 가리고 있는 어둠을 밀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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