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경제학의 시장 논리에 따르면 전·월세가 공급과 수요의 균형점을 넘어서면 주택 매입 수요가 늘어나야 한다. 특히 중산층의 상징인 ‘내 집’은 노후대책과 자녀교육의 버팀목 같은 것이기에 52주 연속 상승한 전세가의 반란은 시장 실패의 총체적인 현상이자, 수요자의 반란에 기반을 둔 시장의 역습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시장의 역습과 수요자의 주머니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다. 집값이 내려가고, 곳곳에 미분양 물량이 넘쳐나며, 전세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매매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것은 소득 대비 집값이 아직도 높다는 증거임에도 정부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가 만병통치약인 양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세금 감면은 일회적일 뿐 유지능력을 키워주지는 않는다. 지속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은 한 내 집은 전세보다 더욱 많은 돈이 들 뿐만 아니라 2018년까지는 부동산시장이 오를 가능성이 없다.

대한민국의 집값이 국민소득 대비 여전히 높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이후 집값이 내려갔다고 해도 아직 거품 일부만 걷어냈을 뿐이다. 정부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로 집값 상승을 부추겨 ‘중산층 70%’라는 박 대통령의 공약을 달성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허황한 꿈이다.

통계청의 자료로는 IMF 이후 근로자의 실질임금과 가계의 실소득이 가파른 내림세로 접어들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다시 한 번 큰 폭의 하락이 발생했다. 또한, 국세청의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 상위 1%의 평균소득이 3억 8,120만 원으로 늘어난 반면 중위소득은 2,510만 원에 머물러, 그 차이가 무려 15.1배까지 벌어졌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OECD 가입국 중 미국과 멕시코와 함께 중하위층의 실질소득이 가장 많이 준 나라가 됐다. 집값이 내려가고 전세가가 가파르게 상승해도 매매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중산층이 빚을 내서 집을 사도 유지할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중산층이 이런데 연소득 1,688만 원의 하위층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중산층의 공동화와 하위층의 몰락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오로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 정부 재정의 주요 항목인 부동산 관련 세금을 모두 다 풀어주고 있다. 심지어 집값 상승의 주범인 다주택자에게도 혜택을 주는 것이 전·월세 대란에 대한 대책이라고 내놓을 모양이다.

부동산에 대한 각종 면세조치가 남발하면 대체 어디서 구멍 난 세수를 마련하겠다는 것인가? 지방자치단체는 어떻게 복지 예산을 마련할 것이며, 육아 보육은 아예 포기할 생각인가? 도대체 이명박 정부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된 서유럽이 2007년 말부터 무제한 양적 완화를 한 미국과는 달리 경제위기를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 주거에 대한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면 부동산시장의 실패와 역습, 붕괴로부터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서로 모순되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와 ‘목돈 안 드는’ 전·월세 대책으로는 중산층 70%도 달성할 수 없고, 서민의 주거 안정도 이룰 수 없다. 경제가 대침체기에 빠졌을 때는 아래와 같은 암묵적 합의가 필요하다.

분수효과만이 작금의 전·월세 대란을 잠재울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이루려면 정부의 정책이 근로자와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가계의 실소득을 늘려주는 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