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2014년 새해를 맞는 민주당의 각오를 담은 내용이었지만 실망스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과거회귀식 불통의 통치를 막아내겠다는 제1야당으로서의 결기가 보이지를 않는다. 특검을 관철하겠다, 철도 민영화와 의료 영리화를 막아내겠다는 다짐은 했지만, 민주주의 가치와 충돌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같은 것을 읽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 배경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번 기자회견문을 보면 시작부터 계속 강조된 것은 민생문제에 대한 관심이었다. 지난 한해 동안 불가피하게 정치적 투쟁만 계속하다보니 민생문제를 소홀히한 것 아니냐는 시선을 의식한 무게중심의 이동으로 해석된다. 물론 민생문제 중요하고 강조해야 한다. 거기에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과거회귀적이고 일방통행식인 국정운영의 대전환을 강력히 촉구하고, 그렇지 않을 상황에 대한 야당으로서의 경고를 내놓는 일이 뒤로 밀려난 분위기이다.

지난해 민주당이 계속 투쟁을 벌였던 문제 가운데 해결된 것을 별반 찾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지켜보는 입장에서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제 민주당은 민생 우선을 표방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통치에 맞서는 일은 접어두기로 한 것인가. 제1야당이 그 얘기를 하지 않으면, 그러면 소는 누가 지킬 것인가. 그리고 김한길 대표는 “새로운 국민통합적 대북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고 언론들은 이를 햇볕정책의 수정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논란이 제기되자 김 대표는 “햇볕정책의 대원칙은 유효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박근혜 정부를 향한 국정운영 기조 전환의 요구가 부상했어야 할 자리는 이미 햇볕정책의 수정이라는 내용이 차지해버렸다. 언론은 자신들의 기대를 반영하며 의식적으로 햇볕정책 수정 얘기를 부각시켰다. 물론 김 대표가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겠지만, 그래서 그의 기자회견은 박근혜 정부를 견제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힘을 보태주는 듯한 분위기를 낳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 일변도의 국정운영과 경색된 대북정책의 문제가 부각되지 못하고, 반대로 결국 야당도 박근혜 정부를 따라 대북정책을 수정한다는 인상만 심어주고 말았다. 남북 대치상황을 타개하고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제1야당으로서의 요구와 대안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고, 오히려 북한을 향한 압박에 동참하는듯한 모습만 눈에 들어오고 있다.

김한길 대표의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면 최근 강대국들의 격전의 장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동북아정세, 그 속에서의 남북대치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같은 것이 전해지지 않는다. 제1야당의 대표로서 현재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역사적 인식같은 것이 없어 크게 아쉽다. 이런 가운데 던진 새로운 국민통합적 대북정책이라는 것은 얼마나 단견인가. 거기에는 보수층 혹은 중도층의 정서에 다가가기 위해 보다 보수적인 대북정책으로 가자는 것 이상의 의미가 실려져있지 못하다. 이념적 접근을 넘어선 역사적 인식이 부재해 보인다.

새해 벽두부터 박근혜 정부에 대해 날을 세우는 모습을 피하려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의 문제보다 자신들의 문제를 더 많이 얘기하려 했을 수도 있다. 자기의 변화와 성찰의 필요성을 많이 말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내용이 정세에 부합되는가 하는 점이다. 집권 2년차를 맞아 박근혜 정부를 향해 국정운영의 대전환을 강력히 요구해야할 시점에 난데없이 햇볕정책 수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관심사로 부상해버렸으니 하는 말이다. 변화와 혁신은 분명 필요하지만 김 대표의 기자회견은 그 과녁이 빗나가버린 모습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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