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공간을 헤매는 생명들

바퀴벌레 새끼가 주방에 나와서 기어 다닌다.
당연히 배가 고파 먹이를 찾아 나왔으리라.

세계명화에 낀다는 <7인의 사무라이>대사 중에 “산짐승도 배고프면 마을로 내려온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바퀴새끼도 배가 고파 위험을 무릅쓰고 나왔나보다.

녀석은 나를 보고 쪼르르 기어 살짝 몸을 숨기는데 내 눈에는 녀석의 정체가 다 보인다.
나는 순간 갈등을 느낀다. 죽여 버릴까, 살려 보낼까?

이 녀석을 살려두면 내 주방이나 방안에서 일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살려 보내면 계속 자라서 수많은 새끼를 연속 낳아 집안 전체가 그놈들 세상이 되리라.

놈들이 끼치는 피해는 한두 가지 아니지만 책갈피에 배설물을 연속으로 갈긴 것이 제일 나쁘다.
녀석들은 집을 짓진 않아도 일정한 자리에 머무는 습성이 있다. 그게 문제다. 계속 한곳에 배설물을 분비시켜 예쁜 책 표지를 더럽힌다.

죽일까 말까?
작은 개미만한 새끼는 지금도 숨을 자리에 엎드려 있다. 어미는 알만 낳아놓고 어딘가로 가버리고 알들은 스스로 부화해 제각각 살길 찾아 헤어졌을 것이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후각으로 먹이를 찾고 본능적으로 위험을 피하면서 헤매는 생명체.

이놈들을 볼 때마다 서울 가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헤매고 있는 두 딸아이들이 생각난다. 이렇다하게 제대로 자리 잡아주지 못한 부모 밑에서 벗어나 갈길 마저 불확실한 하늘 아래서 아이들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된 채 나날을 불안과 시련 속에서 보낸다.
너희들 갈 길 너희들 자신이 알아서 하라는, 바퀴벌레 어미 같은 내 입장이 못내 서글퍼진다.

지난해에는 시골에 어느 농부가 딸이 서울에서 술집에 나가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 낫을 들고 올라가 목을 쳐 죽여 버린 사건이 뉴스에 떴다.
남의 일 같지 않아 몹시 마음이 아팠다.

부모로서 잘 기르지 못한 자식에 대한 큰 기대는 안했을지언정 그렇게 까지 못되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안고 막연히 대도시로 나간 아이들, 딱히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밖은 한없이 화려해 보여도 실상은 한없이 살벌한 생존의 싸움터에서 하늘빛이 푸를수록 서글픔만 가슴에 쌓여가는 청춘들.

전라도 처녀라면 아시아나 항공기 타면서 두꺼운 월급봉투 받고 하늘을 날고 싶었겠지. 누가 멧돼지 같은 속물 수컷들 시중드는 술집 접대부로 일하고 싶었을까? 엄마 아빠가 낳아 기를 때는 달이냐 별이냐 했던 아이들도 막상 자라서 현실 앞에 놓이면 더러는 쓰레기가 되기에, 꽃으로 피고파 몸부림치던 행위가 하수구로 떠내려갔으리라.

지금도 바퀴벌레 새끼는 내가 움직여 어딘가로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위험할 땐 도망치고 숨어라. 엄마 아빠가 가르쳐 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천성의 본능으로 알게 된 생존법을 내 앞에서 활용하고 있다. 가증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느껴진다.

녀석은 내가 모를 줄 알고 꿈쩍도 하지 않고 작은 목숨을 수세미 한편에 숨기고 있다. 친구도 없다. 엄마의 보호도 아빠의 경계도 받지 못하고 오직 저 혼자뿐이다. 죽어도 슬퍼해 줄 이웃도 없고, 죽은 영혼이 천국에 갈 거라는 눈먼 종교인의 복음도 들은 바 없다. 오직 먹고 싸고 새끼 낳고 살다 죽으면 그 뿐인데 천적인 내 눈앞에 놓여있다.

죽이기엔 너무나 어리다.
어쩔까. 이 놈 한 마리 살려 보낸다고 내 책상이 한층 더렵혀진다거나 책장이 추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해충으로서 나를 괴롭힐 것임이 분명하다.

딸아이들이 가끔 집에 내려오면 녀석들과 핵전쟁을 벌인다.
한 마리만 보이면 그곳은 3백년간은 얼씬도 못할 만큼 약으로 집단 사격 융단폭격을 가한다.
온 방안이 약냄새로 진동한다.

나는 말한다.
“살려줘라. 우주는 모든 생명이 함께 공유하고 살라고 창조 된 거야. 개미랑 바퀴랑 사람이랑 강아지랑 함께 사는 거야.”
“싫어! 나는 이네들 하고는 같이 못살아! 아빠하고나 같이 살아!”
옆에 있던 딸애도 한 마디 거든다.
“진짜 바퀴벌레를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 아빠밖에 없을 거야.”

눈곱만한 벌레를 앞에 두고 나는 많은 고민을 한다.
쌀벌레라면 내가 먹을 식량을 비록 좀 망쳐 놓을 지라도 굳이 신경 써 죽이려 들지는 않는다. 이놈들은 워낙 추태를 부리기에 생사를 놓고 고민하는 거다.

어쩔 수 없다. 죽여야 한다.
고민 끝에 이놈을 몰아서 싱크대 물구멍으로 몰고 몰아 물과 함께 떠내려가게 쓸려 보낸다. 녀석은 물살에 못 이겨 버둥거리다 물과 함께 사라진다. 순간이지만 마음이 가볍질 않다.

이 사회의 해충은 아니지만, 아빠는 멀리 떨어져 서울 하늘 아래서 헤매는 어린 딸아이들이 생각난다.

▲ 강환식

<출처 – 나눔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