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X 서대전 경유로 논란의 불씨가 된 호남고속철과 노선도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사람이 있다. 밥을 지어 이제 뜸만 들이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데 심술 사납게도 숟가락질을 못하게 한다. 성질치고는 되게 더럽다.

우여곡절 끝에 호남선 완행열차를 8조원이나 들여 303km를 1시간 33분 만에 주파하고 싶은데 한사코 발목을 잡는 이들이 있다.

비정상적인 길을 정상화 시키려고 하는데 되레 구불구불하면 어떠냐고 딴죽을 거는 소위, ‘넋 나간 사람’들 말이다.

필자는 이들을 ‘호남고속철을 터는 현대판 산적’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다.

코레일 사장 최연혜,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 불통의 정치로 지칭되는 청와대가 바로 그들이다.

정치적 논리로 풀게 따로 있지 이들 ‘호남고속철 산적’들이 한 묶음으로 움직이며 화근을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기에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호남선은 애환이 서린 철도다. 그래서 호남선 앞에는 ‘비 내리는’ 이란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는다.

‘비 내리는 호남선’ 그리고 ‘남행열차’는 그동안 역대정권의 지역차별에서 오는 슬픔과 인고의 세월을 한 잔의 소주에 얹어 달래는 국민가요가 됐다.

그 호남선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오는 3월이면 고속철로 변해 개통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3인방’들이 훼방꾼으로 끼어들었다.

최연혜 사장은 호남고속철이 쌩쌩 달리니까 심술 난다며 약간 철로를 구부리자고 제안한다.

지난 6일 서승환 장관에게 제출한 운영계획안에 ‘호남고속철의 20%를 서대전역을 경유해서 가도록 하자’고 슬쩍 집어 넣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의 ‘산적’ 노릇 좀 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하지만 도적질을 해도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당당한 게 아니고, 단순히 자신의 정치적 입신양명을 염두에 두고 그리 했다면 분명코 잘못된 게다.

최 사장은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신청한데 이어 19대 총선에서는 대전 서구 을에 직접 출마해 낙마했다.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새누리당 대전 서구 을 당협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정치 지향적인 여성이기에 내년 총선을 겨냥해 지역구 한자리를 노리기 위해 ‘고속철을 재물’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 온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인 서 장관과 함께 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

여기에 대전시장 권선택이 합세한다. 그리고는 지난 20일 코레일 본사 사옥에서 축배의 잔을 든다.

‘호남 고속철이 서대전역을 경유하게 한다면 우리들의 정치적 앞날은 구만리장천처럼 밝다’고 말이야.

물론 이들의 속내에는 호남고속철로 정치적 애드벌룬을 띄우면 야당과 여당이 혼재하는 대전의 민심을 아우를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들의 정치적 의도는 호남권 뿐만 아니라 충북권의 반발을 불러오면서 급기야 그 화살이 청와대로 향하게 만들었다.

혹여 이들이 국가 전체를 대전권 대 충북권과 호남권으로 지역을 양분시키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노리려고 계산된 행동을 했다면, 그리고 청와대가 이를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꿍꿍이속이 탄로 나자 새정치연합 광주·전남과 전북 국회의원들은 부랴부랴 불끄기에 나선다. 21일 서 장관을 만난다.

호남고속철의 서대전 경유를 즉각 철회하고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최 사장을 해임하라고 촉구 한다.

그동안 지역이슈나 현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이들 의원들로서는 광주시와 전남도 ,의회, 경제 및 시민단체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자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을 게다.

▲ 박병모 前 FC단장

과거는 그렇다 치고 이번 의원들의 행보에 중심축이 된 한 여성의원이 유독 눈에 뛴다.

새정치연합 광주시당 위원장으로 추대된 박혜자 의원이다.

몇 일전 취임식에서 “광주정신을 살려 중앙당이나 광주시에 할 말을 당당하게 하는 시당위원장이 되겠다”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쳐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연설도중 윤장현 광주시장을 연단으로 불러들여 ‘한 말씀하시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광주시정에 대해서도 할 말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학교수 출산에 도청 국장을 지낸 초선의 가냘픈 그녀가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남성의원들을 응집력 있게 결집시키고 한 목소리로 지역현안을 풀어나갈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그녀가 얘기했듯 자신은 첫 여성위원장에다 초선이지만 최고위원을 지냈다는 자부심을 가끔 내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당위원장으로서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호남고속철 문제가 그렇다.

다음으로 4월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에 이반된 민심을 끌어 모아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 그리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을 앞두고 자신이 줄기차게 제기해왔던 문화수도 특별법을 관철시켜야 한다.

박 위원장으로서는 3가지 문제가 자신의 정치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수 밖 에 없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정치 현실 속에서 그녀는 당장 광산구와 북구로 나눠져 광주역으로의 진입을 고집하는 일부 의원들을 다독여야 한다. .

대전을 경유해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광주역 진입도 어렵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몇몇 전· 현직 시구의원들이 전당대회 당 대표에 출마한 특정인을 밀겠다고 어제 기자회견을 했다.

지역 내 여론이 갈라지고 흩어지고 제각각인 광주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들만의 자유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차라리 자신들이 미는 후보에게 호남고속철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했다면 더욱 빛이 났을 걸 그랬다. 

물론 이런 대형이슈는 박 위원장 혼자서 해결할 수가 없다. 그 한계가 노정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광주시의 적극적인 동참과 함께 중앙당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른다면 호남고속철 문제는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그런 점에서 박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때 차디찬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는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버린 시민들과 중앙당을 향해 이렇게 외쳐야 한다.

새정치연합 당 대표주자로 나선 3인에게는 특별하게 요구해야 한다.

오직 정치권력에 눈이 어두워 상대후보를 헐뜯는 일에 골몰하지 말고, 호남고속철 문제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라고 주문해야 한다.

구부러진 호남선을 반듯하게 폈는데 다시 구부리려는 산적들의 행태가 말이 되느냐고 말이다.

대전표가 아쉽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원칙과 소신과 용기가 있다면 호남고속철에 대해 한마디 쯤 언급하고 가라고.

광주에 와서는 호남을 팔면서 무엇이든지 해줄 것처럼 하던 당 대표 후보들이 이제 대전으로 가서는 그쪽 표심을 얻기 위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감동도 없고 흥행도 비전도 없다, 3無가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앞으로 비 내리는 호남선이 완행열차 그대로가 아닌 고속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정치연합이 텃밭인 호남을 위해 입장표명을 해야한다.

‘호남을 보듬고 가든가, 아니면 버리든가’

중앙당, 아니 당 대표 후보 차원에서의 용기 있고 선선한 한마디가 절실함으로 다가오고 있는 순간이다.

박병모 칼럼리스트  webmaster@ev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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