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에는 청둥오리 한 무리가 대형을 길게 유지하며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날아가고 있다.
28일 오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자유로를 달린 끝에 도착한 통일대교 너머의 서부 민통선 이북 들녘은 겉보기로는 이렇듯 가을의 한가로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렇지만 논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을걷이가 끝난 논 사이 곳곳에 인삼밭이 자리를 잡은 어색한 풍경이 펼쳐졌다.
두루미와 재두루미의 최대 월동지로 꼽히는 백연리 일대의 농경지를 비롯해 서부 민통선 이북 지역에 인삼밭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라고 한다.
물 빠짐이 좋은 토양과 일교차가 크고 서늘한 기후 등 인삼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민통선 이북 지역에서 생산된 인삼이 최상품으로 대우를 받으며 인기를 끌면서다.
자본력이 풍부한 외부 인삼업자들과 현지 농민이 앞다퉈 인삼 경작에 나서면서 현재 파주에서는 400여 농가가 500여㏊에서 6년근 인삼을 재배하고 있다.
파주시는 올해로 5회째 맞는 파주 개성인삼축제를 열고 있다.
그러나 우후죽순 늘어난 인삼밭은 민통선 이북 지역의 경관과 생태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우선 이 지역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류가 눈에 띄게 적어졌다.
김승호 DMZ(비무장지대) 생태연구소 소장은 "농경지 내 인삼밭 증가로 재두루미의 월동 개체 수가 예년에는 130여마리였지만 작년에는 67마리로 절반가량 줄었고, 올해도 10월 현재 42마리만이 관측됐다"며 "월동지 지형을 기억하는 습성이 있는 재두루미가 인삼밭 탓에 바뀐 지형에 혼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6년과 2007년 검은목두루미, 흑두루미 등이 월동하려고 백연리 일대를 찾았지만 작년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삼밭은 농경지뿐만 아니라 서부 민통선 이북 지역의 구릉과 야산을 뒤덮은 다양한 식생 군락지를 위협하고 있다.
DMZ 남방한계선 근처인 장단면 노상리 경의선 건널목 뒤편에 있는 2㎢의 신나무 군락지의 절반은 인삼밭에 잠식당했다.
신나무와 버드나무 등 습지 식생 나무의 밑동이 잘려나간 채 곳곳에 방치돼 있었고 인삼 경작과정에서 습지의 물을 모아놓으려고 인위적으로 파 놓은 웅덩이는 썩어가고 있었다.
파랑새와 꾀꼬리,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2급인 붉은배새매의 번식지가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무참히 짓밟힌 현장이었다.
1㎞ 남짓 떨어져 있는 군 작전 도로변에 설치된 미확인 지뢰지대 철조망 너머로 6·25 이후 50년 넘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다양한 식생이 공생하며 원시림을 이룬 인근 숲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농약을 희석시키려 만들어 놓은 인삼밭 주변 물탱크 옆에는 태우다 만 농약 봉지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폐기된 인삼 가리개와 지지대로 쓰이던 나무 막대기들이 흉물처럼 곳곳에 쌓여 있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심지어 2㎢가 넘는 대규모 인삼밭이 노상리 일대의 DMZ 남방한계선 초소 턱밑까지 들어섰으며, 진동면 하포리 허준 묘에서 1㎞ 정도 떨어진 임야 등지에서는 군사보호시설로 민간인의 지뢰지대 출입을 막는 철조망까지도 불법적으로 걷어내고 벌목하는 현장이 목격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민통선 이북 지역 중 농경지와 주거지를 제외한 전 지역은 미확인 지뢰 지역이라 군에서는 지뢰법에 따라 이를 주민에게 알리려고 철조망을 설치하고 지뢰 표식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간인이 자기 소유 토지라고 해도 지뢰지대를 훼손하거나 표식을 제거했다면 지뢰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먼저 토지 소유자에게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불이행 시 고발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인삼밭으로 개간하려고 나무를 베고 파헤친 뒤 방치한 임야에는 어김없이 생태계교란 외래종인 단풍잎돼지풀 등이 점령하고 있었다.
무차별 개간이 횡행하는데도 산림자원에 관한 법률은 지목이 밭과 논으로 면적이 5천㎡ 이하면 소유주가 개간을 위해 임의로 벌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유관기관 간의 정보공유가 이뤄지지 않아 별다른 제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소장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인삼밭을 만들기 위해 50년 넘는 세월을 거쳐 형성된 생태환경을 하루아침에 없애기 전에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며 "민족 분단의 상징이자 한반도 생태계의 보고인 DMZ와 생태 축을 이루는 민통선 이북 지역의 훼손을 막기 위한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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