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판결 직후 여당인 한나라당은 의회의 자율성을 존중해 온 사법부의 전통적 입장을 견지한 것이라고 환영하면서 미디어법 후속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정치적 결정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미디어법을 원점에서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헌재의 결정으로 미디어법 문제가 해소되기 보다는 후폭풍이 강하게 몰아칠 조짐이 보여 우려가 앞선다.
어쨌든 헌재의 결정으로 개정 미디어법은 일단 법률로서의 자격을 얻게 됐다. 하지만 헌재가 지적한 절차상의 위법성에 대해서는 진지한 반성과 고민이 따라야 할 것이다. 먼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은 재판관 9명 중 5명이 지적한 위법성에 관한 것이다. "권한이 없는 사람에 의한 임의의 투표행위나 대리투표로 의심받을 만한 행위 등 극히 이례적인 투표행위가 다수 확인됐다." "표결 과정에서 표결의 자유와 공정이 현저히 저해돼 결과의 정당성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 이런 지적들이다. 또 국회 심의중에 질의 및 토론 신청의 기회가 실질적으로 봉쇄됐다는 의견도 절반을 넘었고 따라서 7대2 의견으로 권한 침해가 인정됐다.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사부재의 논란과 관련해서는 재판관 5명이 "투표 집계 결과 재적의원 과반수에 미달한 경우 부결로 확정된다. 이를 무시하고 재표결을 해 가결을 선포한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한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이런 위법성이 확인됐는데도 재판부가 개정 미디어법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은 `헌재는 권한 침해만 확인하고 사후 조치는 국회에 맡겨야 한다'거나 `일사부재의 위반은 인정되지만 가결 선포를 무효로 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이유 때문이다.
상황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헌재는 과거에도 이번과 유사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1996년 12월 노동법 개정안 처리 당시에도 헌재는 야당 의원의 권한 침해를 인정했으나 법률안 가결 선포에 대해서는 무효 결정을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국회내에서 벌어진 입법전쟁으로 야기된 논란에 대한 헌재의 개입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이는 국회내의 입법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세력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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