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 나라를 말아먹는 자들이 있다면 당연히 가장 앞서서 막아야 할 세력이 보수 아닙니까? 나라를 지켜야 하니까요. 이형. 전임 주한 미8군사령관이 중장에서 소장으로 강등 전역 당했다는 얼마 전 외신 보도 기억하시죠? 재임할 때 한국인에게 받은 선물 때문이었다는데요. 그 선물이 몽블랑 만년필과 가죽 가방이라는 사실 앞에서 저는 ‘미국 보수’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자신이 보수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 나라를 지킬 뜻이 도무지 없어 보입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보십시오. 그게 과연 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요? 정파적 보도로 ‘자위’하는 언론들 지난 사월에 다산을 참배하고 쓴 편지에서 저는 “국가정보기관이 대선에 적극 개입한 반민주적 작태가 확연히 드러났는데도 대다수 언론이 되레 차분한 이 나라는 대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까요”(미디어오늘 2013년 4월 24일자)라고 물었지요.
딴에는 완곡하게 촉구하면서 언론인들이 자발적으로 보도에 적극 나서길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부터 일그러지더군요. ‘대북심리전’이라는 국정원 해명을 두남두는 조선일보 ‘정치 담당 에디터 겸 부국장’의 칼럼이 이례적으로 1면에 나왔지요.
이형과 기자경력이 거의 같을 그의 칼럼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바라보는 신문·방송사의 고위간부들 ‘생각’을 짐작케 합니다.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하려면 고작 그런 일을 했겠느냐는 논리는 곧장 ‘그러니까 그게 아니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참 해괴한 논법이지요. 대체 2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면서 그는 무엇을 배운 걸까요? 국가정보기관이 야당의 대선후보에 색깔을 칠하는 댓글을 올린 사실, 그것을 수사하는 경찰청 고위간부가 진실을 호도하는 기자회견을 선거일 앞두고 한밤중에 연 사실을 어쩌자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걸까요? 문제의 ‘정치 담당 에디터 겸 부국장’은 신문사 내에서 제법 ‘엘리트’로 꼽혀온 기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 칼럼 뒤 지금까지 대선 개입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들이 곰비임비 발견되었지요. 그럼에도 그의 생각은 ‘요지부동’이더군요. 최근 그는 “촛불 10만이 대통령 지지 1600만보다 큰가” 제하의 칼럼에서 다시 엉뚱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촛불 세력”이 참가자 수를 부풀려 선전하고 그것을 무기로 삼을 것은 “속된 말로 안 봐도 비디오”라고 단정했습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 평가한 응답이 57%라며 유권자 4000만 명 가운데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못하고 있다는 사람보다 1600만 명가량 많다는 ‘산수’를 늘어놓습니다.
그 ‘민심’이 촛불 개수가 10만, 또는 20만이 된다고 바뀔 리가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지요. 그 논리대로 하면 국민투표에서 절대다수의 찬성을 얻은 ‘유신헌법’을 철폐하라며 몸 던진 사람들은 모두 ‘시대착오적’이겠지요.
실제로 조선일보사 그의 선배들이 ‘그 따위’로 보도했습니다. 기자 경력이 사반세기인 ‘고위 간부’ 글엔 저널리즘의 기본인 시시비비, 곧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전혀 없습니다.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의지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과연 기자일까요? 물론, 그는 개인이 아닙니다. 국정권의 선거개입을 모르쇠하고 짐짓 그것을 정파적으로 바라보며 ‘자위’하는 이 땅의 숱한 언론인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조중동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KBS와 SBS도 소극적으로 보도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퇴진한 김재철이 망가트린 MBC는 아예 모르쇠 하더군요. ‘낡은 사고’로 발목 잡고 이형. 그래서이겠지요.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라는 반민주적 범죄 행위의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촛불의 상식적 요구 앞에서 집권세력은 자성할 섟에 되레 강공 태세를 갖추며 언구럭부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론계의 사주들과 고위 간부들에게 정중하게 묻고 싶습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흐지부지 넘어갈 때 조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대체 언제까지 ‘노무현 타령’을 할 건가요? 도대체 언제까지 ‘종북’을 팔아먹을 셈인가요? 주류신문과 공영방송이 시나브로 ‘일베’ 수준이 되어가는 모습이 정녕 보이지 않습니까?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일본의 저 천박한 극우 신문마저 ‘국가첩보기관의 선거 개입’을 마음껏 조롱하는 나라로 전락했나요?기실 언론만이 아니지요. 이 나라 곳곳에서 보수도 아닌 사람들이 ‘보수’를 내세우며 세계화에 전혀 걸맞지 않은 ‘낡은 사고’로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말아먹다’는 “송두리째 날려 버리다”는 뜻을 담고 있지요. 그들에게 마음을 연 성찰을 진지하게 권하는 까닭입니다. 정말 말아먹을 셈인가요? 대한민국을?
▲손석춘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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