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등 정치적 중립과 선거불개입을 엄격하게 지켜야 할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엄청나게 많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민주당은 “대선불복종은 아니다”는 등 수세적 자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마침 어제 문재인 의원이 “국정원 등 권력기관이 대선에 개입하고 관권선거를 자행했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 것은 그나마 적절한 입장표명이었다.

사실 국기기관이 지금 드러난 바와 같이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거기다가 이런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을 의심할만한 상황이라면 민주당은 “선거를 다시하라”며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비록 이미 선거무효 소송의 시효가 지나 선거를 무효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한두 달 전보다 더 맥이 빠져 있다. 왜 그럴까? 싸우지 않아야 할 때 무리하게 싸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지난 대선 기간에 드러난 국정원 댓글 사건은 크게 싸울 만한 사건이 되지 못했다. 관련자도 불과 한두 명이었고 그 정도의 댓글은 장난삼아 달 수 있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검찰과 법원 등 사법기관의 조치에 맡겨 두었어야 했다.
그래서 민주당 대선 패배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면서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다시는 ‘다 이긴 선거를 지는’ 일이 없도록 인물을 키우고 전략을 수립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국정원 댓글사건에 매달려 싸우지 않아야 할 싸움을 해서 명분도 실리도 잃고 말았다

한마디로 ‘늑대와 소년’의 비유가 꼭 들어맞는다. 늑대가 왔다고 계속 거짓말을 해서 도와줄 사람들을 다 불신하도록 만들어 놓은 터에 진짜 늑대가 오니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우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사태의 엄중성을 직시하고 야당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곧 지난 대선 때의 부정선거 진상을 철저히 밝힐 방안을 제시하고, 그 진상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하고, 검찰의 대선사건 은폐 문제에 대해서는 국정감사를 실시해야 한다. 공연히 검찰의 내분에 편승해서 검찰 흔들기나 해서는 안 된다.

▲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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