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초대석> 중국 서화계에 혜성으로 떠오른 조선족서화가 한정호

이지수 기자l승인2023.03.22l수정2023.03.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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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호 서화가

조선족이지만 조선족사회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서화가 한사람이 최근 몇년간 중국 서화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맹활약을 하고 있다.

그가 바로 묵인(墨人)이라는 호로 중국 서화계의 주목을 받고있는 한정호다. 

1953년에 화룡의 한 시골에서 태여나 어려서부터 서화에 남다른 취미를 가졌던 한정호는 1977년에 행운스럽게 천진미술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본 학원은 국내 9개 미술대학 서열에 꼽히는 전업성과 종합성이 짙은 대학으로 북방에서는 첫손에 든다.

그런 대학에서 학생회 주석으로까지 활약한 한정호는 학과공부에서는 물론 학교생활에서도 주목을 받는 몇명 안되는 전액장학생이였다.  

1981년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한 때 화룡현공안국에서 제보자들의 구술로 범인의 화상을 그려내는 내근경찰로 근무하면서 뛰여난 실력을 과시한다.

한정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수백차에 걸친 형사사건들을 본인만의 특수 방법으로 체포하여 형사경찰대대 대장으로 진급한다.

다년간 사회치안과 광범한 백성들의 안전을 지켜낸 공적을 인정받아 3차례의 립공실적을 올리면서 우수경찰로 표창받게 된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개혁개방 바람이 거세게 일면서 처처에 가짜상품이 범람하면서 공상업계가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연변주공상국에서는 산하에 가짜상품배격사무실(打假办)을 증설하게 되면서 정찰능력을 소유한 한정호를 특별초빙했다.

서화가의 예리한 눈썰미로 가짜와 진짜를 분별해내여 건전한 공상질서 유지하는 데 힘 다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맨날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파헤치고 다니는 그 직업이 인간 한정호의 적성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맡은바 사업에 최선을 다 하여 주급 우수공무원으로 여러차례 표창받았다.

▲ 인민경찰시절 한정호 서화가

그러던 차 《연변공상신문》을 발간하게 되여 한정호가 창사사업을 담당하게 되었고 편집은 물론 미술재능까지 갖추다보니 나중에 신문사 책임자로 선임되면서 본 신문이 선후하여 7차례 연변주내 우수언론매체의 영예를 따내게 되였고 본인도 9차례 우수신문공작자로 표창을 받게 된다.

보다싶이 한정호는 항상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사업형 인간으로 평판이 나있었다.

중한수교에 이어 한국기업 중국진출이 가시화되면서 두 나라 사이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변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그러던 2002년 6월 한국 주식회사 누가의료기유한회사가 설립되여 온열치료기를 특허출원하고 그 품목이 한국산업원 기술시험 '적합'판정을 받은 데 이어 품질보증 체제인증을 획득하면서  같은 해 9월에 들어 중국 외상 투자준비를 다그치던 나날에 한정호와의 연이 이어지게 된다.

그 때 이미 공상세무나 법인설립 전문가가 된 그를 어련히 중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그 유망업체의 중국측 대리인(특별고문)으로 발탁된다.

누가의료기주식회사는 번개불에 콩구워먹는 식으로 그해 11월 중국 청도에 누가의료기계유한회사를 설립하게 되고 뒤이어 연태에 중한억천의용설비유한책임회사도 설립한다. 한정호는 이 모든 일에 관여하여 중국측 법인설립 및 공상등록, 인증허가를 도맡았다.

그 뒤 본 업체가 중국 가정용의료기기 시장 점유율 1위를 석권하면서 중국내 구석구석에 1500여개의 대리점을 개설하고 수백억원의 연매출을 달성하는데 한정호는 막강한 기여를 하게 된다.

회사 창립 장장 20여년간 한정호는 부총경리직을 담당하면서 외국기업의 중국진출 생산 판로 발전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인물로 각광받았고 선후하여 국가기관으로부터 '국가의료기계항업10대걸출인물', '전국의료기계항업 선도인물(领军人物)'로 선정되였고 선후하여 8차례나 인민대회당에서 진행한 전국의료기계회의에 참석하였고 2차에 거쳐 인민대회당에서 실무보고를 하는 영예를 지녔으며 선후하여 온가보 총리, 가경림 전국정협주석을 비롯한 여러 당정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다. 

한정호는 20여년간 외국독자기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선후하여 100건에 달하는 민사 및 형사 시비분쟁을 해소하고 16차에 걸친 법정소송안건을 맡아 승소하였고 60여차에 달하는 인명사고안을 원만하게 처리하여 기업체와 정부와의 관계 개선과 애로사항 해소에 '해결사'로 일조했다.

누기의료기계유한회사는 몇백명의 직원을 둔 한국독자기업인데 직원들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

한정호는 전반 회사 경영과 대외업무를 도맡아 해야 하였고 직원들 잠자리 등 생활까지 돌보지 않을수가 없었고 직원들간에 발생한 모순해결에 까지 나서주는 '큰 형님' 노릇을 해왔고 지어 직원가족부부싸움에도 나서서 부모다운 너그러움으로 조해작용을 놀았다. 때문에 회사 그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아침 출근부터 퇴근까지 한정호를 찾아야만 모든 것이 풀리는 상태였다.

2000년 중반에는 회사 년매출액이 10억을 돌파하여 중국에 진출한 한국중소기업 중 최우수기업으로 부상되였는데 그 가운데 무마해서는 안될 일등 공신이 바로 한정호였던 것이다.  

청도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기업체에서 한정호하면 롤모델이고 그를 모르는 외자업체가 없을 정도였다.

그의 명성과 덕망이 나중에는 선후하여 중국한국인협회 고문, 한중친선협회 고문, 중국청도한국중소기업협회 고문, 청도조선족기업협회 고문 등으로 이어져  청도시정부는 물론 재청도한국인들과 조선족들의 존경과 애대를 받아오는 어르신으로 각광받게 되였다.

▲ 조남기 정협 부주석과 함께(좌1한정호),인민대회당 접견실에서

한정호는 지난 몇십년간 공직 및 기업체에 몸담고 있으면서 일관적으로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검소하고 지극히 평민적인 이미지로 알려졌고 일처리에 들어가서는 한량없이 부드럽고 침착하고 공명정대한 사업작법이 몸에 배인 사람이다. 

종래로 큰 소리로 화를 낸 적이 없으며 이목구비가 의젓하듯이 상하좌우 평형감각과 감정조절이 확실한 인물로 존경받아왔다. 

그는 그 복잡다단한 사무중에도 시종일관하게 책을 손에서 놓치 않았고 더우기 본업인 붓과 벼루를 그냥 휴대하고 다녔다. 

독서를 즐기면서 자신을 충전하다보면 반드시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명구를 접하게 되는데 그는 그 보석 같은 명구를 붓으로 날려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그런 한량없는 베품이 그의 인맥을 돈독하게 하였고 또 그가 평생 붓을 내려놓지 않은 서화가로 성장하는 데 촉매제로 작용했다.

필자는 최근에 두 번이나 한정호 화실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첫인상에 크게 눈길을 끌게 한것은 화실에 쌓여있는 중외 문학예술서적과 화실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서화작품들이였다. 

서양화 동양화는 물론 특히 최근에 창작한 수십폭에 달하는 서예작품들이였는데 작품마다 개성과 쓰찔이 돋보여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서화에 문외한인 필자가 봐도 그 담대함과 호방함, 강력함, 디테일함이 느껴졌다.

얼마전에 연변을 방문하는 기회에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나의 연변방문 목적을 알게 된 그는 몇일도 안되는 사이에 우리 글로 된 작품들 10여점을 창작하여 연변문화예술분야에 기증해달라고 하였고 동시에 평소에 소장하였던 작품 몇점도 함께 보내왔다.

그가 최근 몇년간 우리 민족사회에 무상으로 기증한 서예작품만  500여점이 넘는다고 한다.

나와 한정호 인연은 약 5년 전 청도의 어느 골프모임에서 이루어졌다. 늦은 만남이였지만 우리사이는 그때부터 교류가 빈번하게 이어졌고 마주앉으면 시간가는줄 모르면서 지극히 사적인 얘기까지 주고받는 절친으로 발전했다. 화제는 거의 우리 민족 관심사나 후대교양 등이였다.

나는 한정호 화백의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늘 궁금증이 있었는데 작품마다 씌여있는 묵호 (묵인墨人)였다.  어

느 날 골프장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그 궁금증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드디여 그 수수께끼를 풀게 되였다.

중국의 말대황제 부의(傅仪)의 사촌남동생(堂弟) 부좌(溥佐)는 중국 근대의 유명한 시인이자 서예가였다고 한다.

모택동 주석도 부좌의 작품을 8점이나 소장하였다고 한다. 부좌는 그 당시 천진미술학원 겸직교수로 있으면서 서화발전의 미래를 고민하던 중 천진미술학원의 8명 학생을 수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중에 당시 천진미술학원 학생회 주석이였던 한정호가 스카웃되여 부좌 교수의 8대 제자의 한 사람으로 된 것이다.  

그 당시 스승의 특별한 관심과 신임을 받았던 그에게 스승이 손수 그의 미술작품 묵호를 "묵인 墨人"이라고 칭하여 주었다고 한다.

한정호는 그 번다한 직장생활과 외국독자기업의 부총경리 직에 있으면서도 시종여일하게 스승의 가르침대로 붓을 내려놓지 않고 끈질기게 서화와의 끈을 이어왔다.

하여 지금까지 수백폭에 달하는 예술작품을 창작하여 국내는 물론 한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로씨아, 조선, 까자흐스탄, 월남 등 나라에서 개인작품전시회를 13차나 개최하였다.

그의 작품은 중국 국내 북경, 홍콩, 복건, 절강, 광동, 안휘, 산서, 섬서, 산동, 사천, 강서, 안휘, 호남, 호북, 하북 등지에서 전시되였고 전국정치협상회 전시청, 한국국회 전시청에 전시 소장되었고 해외 유명한 정치인들과 예술인들이 그의 작품을 구매소장하였다.

▲ 중국우표로 발행된 한정호 서화가 작품

뿐만 아니라 1979년에 전국서화대전 1등상, 1989년 전국서화대전 1등상을 휩쓸었고 수십차 국제, 국내 미술전시회에서 수상하였는데 무려 12점이 국내우표, 8점이 국제우표로 제작되여 발매되었다. 

한정호는 이미 고희를 넘겼어도 만강의 열정으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수첩에 적혀있는 한달간의 꽉 차 있는 스케쥴을 보고 필자도 많이 놀랐다.

주로는 후학들을 위한 서예강연이다. 한주간 5일을 강연에 림하는데 기업인반, 부녀반, 어린이반, 특별학원반 등 다양한 계층으로 이루어졌는데 비용은 그냥 유지비 차원에서 받으며 봉사 위주로 진행하는 것이다.

최근에 한정호 화백이 인기 투표중인 중국 墨赞山川杯 평선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풍격으로 립지를 굳혀 어깨를 겨루고 있다니 이거야말로 크게 박수를 보낼 일이 아니겠는가?!                                      - 남룡해

이지수 기자  su.u531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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