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상원조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박대원 이사장을 만나 한국의 개발원조위원회 가입 의미와 앞으로의 대외원조 전망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1991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70여 개발도상국에 무상원조 사업을 벌여 온 한국국제협력단은 지난해 약 3천억원 가량의 대외원조 자금을 집행했으며 DAC 가입을 계기로 계속 늘어날 무상원조를 총괄하게 돼 그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박 이사장은 "한국이 OECD DAC에 가입하게 되면 선진국 위주의 국제원조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이 확정됐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가.
▲ DAC는 세계 원조의 90%를 담당하는 22개 선진국들만이 가입한 조직이다. 한국이 1996년 OECD에 가입한 뒤 여러 산하 위원회에 가입했지만 유일하게 이 DAC에 들지 못했다. 그동안 선진국으로 갖춰야 할 자격 요건인 대외원조 분야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DAC 가입은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 그룹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 한국이 DAC에 가입으로 국제원조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 과거 100년 간 선진국들은 아프리카와 중남미 각국에 원조를 많이 했지만 이들이 정말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줬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발전의 경험을 짧은 시간에 축적해 개도국의 처지와 입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들보다 효과적으로 개도국의 발전을 지원할 수 있다. 실제로 중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개도국들이 한국의 발전 경험을 본받으려 하고 있다.
-- 한국이 DAC에 들어가면 선진국들의 원조 방식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 선진국들은 그동안의 원조 경험을 토대로 100여 가지 원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고 있다. 여기에 한국식 원조 경험을 더해 더 효과적인 국제원조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DAC 쪽에서 대외원조와 관련해 한국의 발전경험을 공유하는 데 대한 기대감을 표시한 적도 있고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의 발전 모델은 바로 한국이다. 한국처럼 되고 싶어하는 나라들에게 한국식 개발원조가 가장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OECD 원조정책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개발도상국들을 위한 원조 효과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 DAC 가입으로 한국의 원조 예산이 크게 늘면서 국민 부담이 가중되는 측면도 있는데.
▲ 정부는 현재 국민총소득(GNI) 대비 0.09% 수준인 원조 예산을 2015년까지 0.25%까지 늘리기로 이미 결정했다. GNI 대비 0.25%는 국민소득을 2만 달러로 볼 때 연간 국민 한 사람 당 약 5천원 정도의 부담이다. 많은 돈을 들이기보다는 우리가 지난 40∼50년 간 쌓아 온 개발 노하우를 나누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
-- DAC 회원국이 됨으로써 한국의 원조 정책에도 많은 제약이 따르는데.
▲ 사실이다. 앞으로는 한국 정부가 원조를 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이른바 '타이드(tied) 원조'를 지양해야 한다. 대신 한국 기업들은 기술과 능력을 바탕으로 선진국 원조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 자그마치 연간 1천억 달러 규모이다. 한국 기업들은 정부 원조 덕을 볼 수 없게 되는 반면 더 크게 열리는 세계 원조 시장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 24일 한ㆍ아프리카 포럼의 한 세션에서 기조연설을 했는데 앞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에서 가장 역점을 둘 분야가 있다면.
▲ 연설에서 밝혔듯이 아프리카의 인적자원 개발을 지원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 아프리카 연수생 수를 5천명까지 늘리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효과적인 원조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이 개발원조를 수용할 태세가 갖춰져 있지 않다. 원조 계획을 세우고도 실제로 집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아프리카 각국 정부의 행정능력 부족으로 프로젝트 진행이 잘 안된다. 이번 포럼을 계기로 아프리카 각국의 대외원조 수용 능력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 동아시아 기후 파트너십에 따라 국제협력단이 아시아 각국의 녹색성장을 지원하는 원조 계획을 수립 중인데.
▲ 현재 각국으로부터 원조 요청을 받아 수요를 취합하는 단계에 있다. 프로젝트 셀렉션 작업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녹색성장 취지에 맞는 원조 프로젝트를 골라내는 것이다.
-- '녹색원조'라는 말도 있는데 동아시아 기후 파트너십에 따른 원조가 이전의 원조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
▲ 예를 들어 아시아 어느 나라의 농업이 발전하려면 물이 있어야 하는데 과거에는 양수기를 설치해 줬지만 앞으로는 녹색성장 취지에 맞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디젤 장비 대신 태양열이나 풍력 발전 시설을 제공할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녹색성장 방식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각국의 발전을 돕겠다는 말이다.
-- 얼마 전 볼리비아와 콜롬비아를 방문했는데, 중남미 원조는 어디에 역점을 두고 있는가.
▲ 중남미 국가들은 한국의 무상원조하면 우선 병원을 떠올린다. 페루와 볼리비아 등지에 병원을 많이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페루에만 5개 병원이 있다. 이 중 하나인 어느 산모병원에서는 연간 8만명의 신생아가 탄생하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을 만났더니 산모 병원을 더 많이 지어주면 앞으로 태어날 페루 국민 모두가 한국 병원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해 한바탕 웃었다. 볼리비아를 방문한 것도 모자병원 개원식을 위해서였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도 한국 정부의 병원 건립 지원을 높이 평가하면서 3개를 더 지어달라고 말했다. 점진적으로 해 나갈 것이다.
-- 한국 정부가 올해부터 콜롬비아에 대한 원조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 올해 콜롬비아에 새로 사무소를 개설하고 원조를 추진하고 있다. 콜롬비아는 6.25 전쟁 당시 중남미에서는 유일하게 군대를 보낸 나라이다. 당시 약 200명이 전사했다. 아직도 약 300명 가량의 70∼80대 부상자들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콜롬비아 방문 당시 나를 국방부 청사로 안내하더라. 청사 마당에 한국전 참전 기념동상이 크게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1천만 달러를 들여 대형 재활병원을 지어 6.25 참전용사 가족들과 국경지대 게릴라 소탕전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의 재활을 돕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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