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호흡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기민이는 어리지만 어른스러워요. 학구적이고, 발레에 대한 센스도 있고,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워요."(박세은)
"세은 누나는 진짜 연습을 많이해요. '빡세은' 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니까요."(김기민)
이보다 더 풋풋한 오데트 공주, 지그프리트 왕자는 없다.
국립발레단이 9-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는 '백조의 호수'를 통해 국내 발레 사상 최연소 주역 커플이 탄생한다.

주인공은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Ⅱ 생활을 접고 올봄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발레리나 박세은(20)과 지난 5월 열린 모스크바 발레콩쿠르 주니어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김기민(17.한국예술종합학교 2)이다.


두 사람은 악마의 마법에 빠져 백조가 된 오데트 공주와, 사랑의 힘으로 오데트 공주를 마법에서 구해내는 지그프리트 왕자로 호흡을 맞춰 국립발레단의 10일 무대를 책임진다.
10대 발레리노가 프로 발레단의 전막 작품에 주역으로 나서는 것은 국내 처음이며, 세계 무대에서도 좀처럼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김기민의 캐스팅이 무용계에서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지난달 드라마발레 '왕자 호동'의 낙랑공주 역으로 첫 전막 주역으로 데뷔한 박세은 역시 아직 만 스무 살 생일이 지나지 않은 '젊은 피'다.

그는 김주원, 김지영 등 10살 이상 차이 나는 쟁쟁한 선배들과 주인공을 번갈아 맡으며 발레단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공연을 앞두고 서초동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두 사람은 "같이 무대에 서는 건 처음이지만, 평소에 워낙 친해 호흡이 잘 맞는다"고 입을 모았다.
"기민이 형 기완이랑은 중.고교 때 파트너를 많이 해봤지만 기민이와는 처음이에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친남매처럼 지내 너무 편하고, 잘 통해요."(박)
김기민의 형 김기완(한국예술종합학교)은 지난 6월 뉴욕발레콩쿠르에서 특별상을 탄 발레리노로, 박세은과는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함께 다친 절친한 친구 사이다.

"어릴 때부터 누나를 너무 좋아해 졸졸 따라다녔어요. 중학교 때 농담삼아 누나랑 언제 파트너 해보냐고 말했는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요."(김)
"발레계에서 10대에 주역으로 뽑힌 것은 정말 대단한 거에요. 특히 발레리노의 경우 더 그렇죠. 남자는 춤도 잘 춰야 하지만, 여자 무용수를 안정감있게 받춰주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실력으로는 주역을 맡기가 더 어렵거든요."(박)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닌데 기민이는 천재끼가 있다. 아는 것도 많고, 연구도 많이 한다"고 치켜세우는 박세은에게 김기민은 "누나처럼 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화답했다.

"세은이 누나는 완벽해 보여도 쉬지 않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죠."
남녀 주역간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한 발레에서 주인공들이 이렇게 친하다보니 시너지 효과가 날 수 밖에 없다.

"옥신각신하는 걸로 보일 정도로 대화를 많이 나눠요. 어떤 날은 연습보다 말을 많이 할 때도 있는 걸요.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미심쩍은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대화로 해결하니까 무대 위에서 확실히 실수가 적어요."(김)
"기민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배려심이 많아요. 여자 무용수를 받쳐줄 때에도 최선을 다하고, 자기가 돋보이려하기 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편이죠. '왕자 호동' 짝이었던 (이)영철 오빠도 그렇고 제가 파트너 복이 있는 것 같아요."(박)
'백조의 호수'를 통해 클래식발레 전막 주역으로 데뷔하는 박세은은 "1막에서는 오데트(백조), 2막에서는 오딜(흑조)로 변신해 두 가지 색깔을 다 표현해야 해 쉽지 않은 작품"이라며 "섬세한 내면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보통 클래식발레를 먼저 거친 뒤 드라마발레를 하기 마련인데, 저는 거꾸로 된 셈이죠. 하지만 드라마발레를 먼저 경험한 만큼 (감정)표현을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어요. 고전발레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깨끗하게 추되,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어요. 결국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은 드라마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김기민은 "운좋게 큰 무대에 남들보다 빨리 서는 기회를 잡았다"며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요즘 스스로를 지그프리트 왕자로 여기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제 나이가 지그프리트 왕자의 실제 나이와 비슷해 표현에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저를 어리다고 여기겠지만,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프로는 어린 티를 내면 안되잖아요. 무대에서는 학생이 아니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들보다 출발선상에 빨리 선 두 사람은 앞으로 펼쳐질 발레 인생에 대한 기대도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박세은은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최근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리허설을 담은 '디스 이즈 잇'을 봤다"며 "그의 치열한 삶의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답했다.

"마이클 잭슨이 왜 '팝의 황제'인지 알겠더라고요. 삶을 대하는 치밀하고, 치열한 태도가 그를 만들었겠죠. ABT Ⅱ에서 돌아온 뒤 사회생활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복귀한 뒤 살이 6㎏나 빠졌고, 지금도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준비를 한꺼번에 하느라 허덕이고 있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싶어요."
그는 "이곳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 만족한다"며 "아직 어린 만큼 한국 무대에서 실력과 경험을 쌓은 뒤 다시 해외 무대에 가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기민은 "스타나 이름있는 무용수는 자기만의 색깔을 띤 춤을 추더라"며 "내면에서 끌어낸 개성있는 춤으로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무대에 서는 게 너무 좋아요. 그래서 빨리 학교를 졸업하고 국내든, 해외든 프로 무대에 서고 싶어요. 또, 무엇보다 춤을 알고 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내가 여기서 슬픈 표정으로 춰야 하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거든요. '카피(Copy)'가 아닌 '오리지널(Original)'이 되고 싶어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5천-15만원. ☎02-580-1300, 02-587-6181.

(사진제공= 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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