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곳, 갯벌

김준 박사 '…갯벌 이야기' 출간

"이 책은 이름 없는 뱃사람, 낙지 잡는 아낙, 바지락을 캐던 청년, 물질하는 잠녀들 모두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나는 또한 갯벌의 갯지렁이와 알락꼬리 도요, 낙지와 칠게에게도 큰 빚을 지고 있다. 그 바다밭에서 나는 우리가 이미 지나온 오래된 미래를 본다."

전남발전연구원의 김준 박사는 1992년 소안도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 꾸준히 섬과 바다, 갯벌을 떠돈 해양 문화 연구자다. '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는 섬 여행' 등을 썼던 그는 갯벌과 그 안의 생명과 자연, 사람들과의 만남을 '김준의 갯벌 이야기'(이후 펴냄)에 담았다.

본격적인 갯벌 기록과 인터뷰에 나선 2000년 이후 일주일에 한 차례는 꼭 바다로 나갔던 저자의 발자취가 그대로 담겨 책에서는 짙은 바다 냄새가 난다.

이 책의 특징은 갯벌을 생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거나 경제적 효용을 따져본 게 아니라 갯벌을 둘러싼 문화와 생태계, 볼거리와 먹을거리, 바닷사람들의 삶까지 갯벌에 관한 이야기를 총정리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먼저 짱뚱어, 칠게, 낙지, 숭어 등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강화도 밴댕이, 신안 병어, 주문진 문어, 제주 자리돔, 남해 지족해협 개불, 벌교 꼬막 등 전국 갯벌에서 나는 싱싱한 먹을거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어 갯벌에 기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고흥 내로마을, 태안 황도리, 함평 돌머리 갯벌, 고창 곰소만 갯벌 등 섬마을과 갯벌을 부지런히 찾은 그에게 바닷사람들은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남편을 잃고 갯벌에서 생합을 잡아 아이들을 대학에 보낸 아낙, 염전 일을 하던 두 형님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도 소금밭을 떠나지 못하는 남자, 30년간 배를 지은 대목장, 제주 바다에서 돌담을 쌓은 원담(고기를 잡기위해 쌓는 담)지기 등 갯벌 사람들이 들려주는 평생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갯벌의 자연사와 함께 민속사도 그려진다. 제주도 고망(구멍) 낚시, 맨손 고기잡이, 물때에 맞춰진 사람들의 시간, 갯귀신에게 지내는 벌교 당제, 제주 잠수굿 등 조상이 대대로 갯벌에서 쌓아온 지혜와 생존법, 제의가 펼쳐진다.

뭍 사람들과 갯벌 사람들의 소통과 갯벌이 지닌 고유한 가치, 갯벌 주변에 형성된 바다 문화를 보여주려 애쓰는 저자는 스스로 존엄성을 가지는 존재로서 갯벌을 바라보고 보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늦게 나타난 갯벌 생물이다. 갯벌은 육지것들이 뱉어 낸 온갖 쓰레기를 말없이 받아들인다. 낙지도 주고, 바지락도 주고, 갯벌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내놓는다. 공장이 필요할 때는 제 몸에 말뚝을 박았다. 제 몸 아까운 줄 모르고 가진 모든 것을 퍼 주었다. 그것이 갯벌이다."
428쪽. 2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