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재개 시급한 일인지 숙고해야

김길태 사건으로 인해 사형제에 대한 찬반 논란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 보인다. 이귀남 법무장관은 16일 흉악범들이 집중 수용된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형집행의 재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이 장관의 발언이 나온 이튿날 국회의장은 구시대적 사형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여당내에서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주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길태 사건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사형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겠으나 지금은 성급한 결론은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판단된다.

사형제도의 존폐와 관련한 찬반 양론의 근거는 이미 잘알려진 것이며 어느쪽이든 설득력을 갖고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생명권이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이며 국가가 이를 박탈할 수 없다는 인권론을 편다.

이들은 또 사형제도의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를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을 과거 역사를 통해 지적한다. 반면 사형제도 옹호론자들의 의견도 현실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다.

교화가 불가능한 흉악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하는 것이 범죄예방과 사회 안전 확보라는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흉악범죄 피해자와 가족들의 울분은 어떻게 풀어 줄 수 있느냐는 의문제기도 있다. 어느 한쪽의 손을 쉽게 들어주기 어려운 논란이다. 헌법재판소가 최근 내린 사형제 합헌 결정의 내용도 이런 고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형제도는 아직 법률적으로 유효하다. 따라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논리 전개만으로는 문제를 유연하게 풀어나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왔기 때문에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돼 있는 점이 감안돼야 한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사형제 폐지를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고 전세계적으로도 사형제 폐지가 대세로 굳어져 가고 있다.

또 대표적인 사형제 유지국가로 불리는 미국의 경우도 대부분의 주에서 사형집행이 비상정지된 상태이거나 매우 드물게 집행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13년동안 유지해온 실질적 사형폐지국의 위치를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비상한 결심이 요구되는 일이다.

또 흉악범죄자에 한해서 사형을 집행하는 선별적 사형집행을 도입하는 것은 위헌적 요소도 있을 뿐 아니라 자의적 법집행의 가능성도 열어준다는 점에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기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자칫 감정이 앞서기 쉬운 요즘 상황에서 사형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 보인다.

해답을 찾기 어려운 사형제 논란에 힘을 쏟기에 앞서 지금은 제2, 제3의 김길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아동범죄를 근절하는데 필요한 법률과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데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