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를 동원해 교육 프로그램의 만족도를 점검하는가 하면 모든 장기 교육과정에 음악 수업을 도입했다. 토요일 오전에는 고위공직자들이 '국가전략 세미나'를 열어 머리를 맞대고 나라의 미래를 논한다.
윤 원장은 "공무원은 논리력과 분석력이 뛰어나지만 감성이 부족하고 행동도 느리다"며 "잠자는 거인과 같은 공무원 조직을 한 박자 더 빨리 움직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하게 하고자 교육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 집무실에서 윤은기 원장을 만났다.
--취임 후 두 달이 됐는데 벌써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아직 교육원은 후방지원기관이라는 인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삼성과 LG, 포스코 등 민간기업 교육기관은 조직 전체의 문화를 바꾸고 신규사업을 제시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 중앙공무원교육원도 변화의 선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 교육원부터 시작해서 모든 공무원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컨설턴트로서 공무원 조직을 진단한다면.
▲공무원과 민간인 조직은 문화가 다르다. 민간 부문은 유연성이 있고 일 처리 속도도 빠르고 성과지향적이다. 공무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은 탁월한데 관료주의 탓인지 느린 것이 문제다. 빨리하다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속도를 내는 것을 주저한다.
현대는 속도의 시대다. 느리면 국가경쟁력에 손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신지식인이란 학력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빠른 학습자를 말한다. 새로운 기술을 한 박자 먼저 배워 활용하고는 버리고, 그다음 또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공무원은 좌뇌가 발달해 논리력과 분석력은 뛰어나지만 공간력과 지각력, 창의력 등 우뇌 기능은 약하다. 잠자는 공무원의 우뇌 기능을 깨워 양뇌형 인간으로 만들겠다. 이를 위해 모든 장기 과정에 음악 수업을 넣어 수료식은 음악회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심리학 자문단을 구성했는데.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소통'이다. 마찰과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의 심리적 저항감이 있는 것은 통하지 않고, 교육 역시 내용이 훌륭해도 듣는 사람이 싫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자문단은 11명의 심리학 전문가로 구성돼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참관하거나 참가자의 의견을 청취해 개선점을 도출해 낸다. 자문단이 성과를 내면 다른 기관에도 확대되도록 하겠다.
--천안함 사태 이후 안보교육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국제 합동조사가 이뤄졌고 물증도 다 나왔지만 조사 결과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조성돼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안보의식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며, 그래서 '신 안보 교육'이 필요하다. 모든 교육 과정에 안보 교육을 포함했다. 특히 올해는 6.25 발발 60주년을 맞아 신임 관리자 교육 과정에 참전 용사 초청 강의를 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공무원은 현장 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데 이를 보완하는 교육은 없나.
▲민간인이 함께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추천을 받아 CEO(최고경영자)를 초청해 기업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청취하는 시간도 많이 가질 계획이다. 현재 신임 관리자 과정에도 참가자들이 지방 시도에 내려가 사업 현장을 둘러보거나 일일 민원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앞으로 '달인 교실'을 만들어 볼까 한다. SBS 교양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에서 착안한 것인데 공직의 달인을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다. 달인이 되는 데 학력이나 자격증은 중요한 게 아니다. 목표치를 극상한치로 잡고 부단한 연마와 수련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달인이다. 달인 정신의 프로세스를 잡아내 공직의 달인, 공공 서비스의 달인을 만들고 싶다.
공직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학력을 너무 중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와 지식의 수명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결국 업무현장에서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다.
다음달부터 달인 교실을 시작할 예정인데 SBS 생활의 달인 담당 PD가 첫 수업 강사가 돼서 달인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달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할 예정이다.
--매주 토요일 국가전략 세미나는 반응이 어떤가.
▲국가전략 세미나는 국장급 이상 고위공직자들이 모여 국가 중대 과제를 논의하는 중요한 행사다.
공무원 조직을 축구에 비유하면 대통령은 감독, 청와대 참모는 코치, 공무원은 선수인데 실국장들은 선수 중에서도 스타 플레이어에 해당한다. 그만큼 실국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휴일 아침에 나와서 세미나 하느라 피곤해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동기부여를 한다. 세미나 시작 전 딱딱한 국민의례 대신 고위공무원으로서 자긍심과 사명감을 느끼도록 동영상을 상영해 분위기를 띄우고 세미나가 끝나면 막걸리 한 잔씩 하면서 친목을 도모할 시간도 만들어준다.
또 세미나에 일찍 나오면 '얼리 버드상', 강의를 열심히 들으면 '열공 포토제닉상', 참가자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소통 포토제닉상' 등 다양한 종류의 상을 만들어 사진도 찍어주고 문화상품권 등 조그만 선물도 주고 있다.
최근 세미나에 참가한 실국장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96%가 교육 내용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외국 공무원을 상대로 한 연수도 활발한 것 같다.
▲외국에서 고위 공무원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다. 외국 공무원들을 잘 교육해 친한파를 많이 만들수록 우리나라에도 좋다. 말레이시아는 공무원 1천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는데 동창회를 만들어 활동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하반기 역점 사업을 소개한다면.
▲중앙공무원교육원의 새로운 비전을 설정해 9월 발표할 계획이다. 61년 역사의 교육원이 단순한 후방지원기관을 넘어 변화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게 하겠다.
비전이 선포되면 교육 프로그램이 모두 재조정돼 공무원 교육의 근본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교육기관의 역할 중 하나가 조직원의 사기와 명예심을 높이는 일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한 것도 공무원이 힘든 곳에서 묵묵히 희생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열정적으로 일한 공무원들의 사기를 올리고 국가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한다는 자긍심을 갖게 하겠다.
일례로 교육원은 군의 사관학교와 같은 곳인데 행정고시 합격자로 구성된 신임 관리자 과정 수료식에는 장관급이 온다. 사관학교 졸업식에 대통령이 오듯이 수료식에 국무총리가 참관하는 방안을 추진해 보겠다.
교육 과정에도 공무원이 긍지를 갖고 떳떳하게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자부심을 심어주는 정신 교육을 강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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