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기일 하루동안 증거조사·검사 논고·변호인 변론까지
검사·변호사 협조 필수적… 위증방지 보완책 마련 과제로
(서울=에버뉴스) 서울중앙지법이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강화된 공판중심주의 재판모델’이 법조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원칙적으로 1회 기일 하루동안 모두절차에서부터 증인·피고인신문 등 증거조사, 검사 논고와 변호인 변론, 피고인 최후진술까지 마쳐 결심하는 집중심리방식이다.

마치 국민참여재판을 보는듯 하다. 선고도 결심후 1~2주내에 이뤄져 집중심리를 통해 얻은 심증이 잊혀지기 전에 판단이 내려진다. 보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특히 다른 사건은 하지 않고 해당 사건 1건만 집중심리하기 때문에 기존 공판보다 충실한 심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일부 시범사례에서 검사와 변호인의 준비부족 등으로 속행 공판을 다시 열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검사와 변호인의 협조가 필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새 모델은 공판에서 나온 증언 등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기존 공판보다 높은 만큼 증인들의 위증을 걸러내고 막을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이 보완돼야 합리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하루만에 모두절차부터 결심까지 ‘달라진’ 공판= 서울중앙지법(법원장 이진성)은 지난 11월부터 형사합의부 사건중 일부를 선정해 ‘강화된 공판중심주의 재판모델’에 따라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공판준비기일을 통해 모든 쟁점을 정리한 상태에서 1회 공판기일을 열어 하루동안 모두절차부터 증거조사 등을 거쳐 결심까지 완료하는 방식이다.

사건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재판부는 해당 공판기일에 그 사건만을 심리하고 공판이 종료될 때까지 다른 사건은 심리하지 않는다.

부득이 2회 공판기일이 필요한 경우에도 바로 다음날 심리하는 연일개정방식을 취한다. 선고도 결심후 1~2주내에 신속하게 선고된다. 집중심리를 통해 얻은 심증이 잊혀지기 전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다. 신속한 재판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실제 9일 이 법원 형사27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가 새 재판모델에 따라 진행한 사건의 선고는 16일로 예정됐다. 결심후 1주일만에 선고되는 것이다.

이 사건이 법원에 접수된 날은 지난달 16일. 불구속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기소된지 한달만에 1심 재판결과가 나온다.

불구속사건을 기준으로 서울중앙지법의 일반 형사합의사건의 평균 공판기일 횟수는 6.6회, 선고까지 사건처리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183.4일로 6개월이 넘는다. 무려 여섯배나 빨라진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되는 방식과 동일하게 모든 증거가 법정에서 연속적으로 생동감있게 조사돼 일반 방청객까지도 재판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건 당사자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보다 크게 보장할 수 있는 방식”이라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대상 사건을 확대실시하는 한편 합의부 재판장들의 의견을 수렴해 새 모델시행에 따른 부작용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 검사·변호인 협조, 제도정착에 필수= 하지만 새 재판모델이 정착하기 위해선 검사와 변호인의 협조가 필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과 관련된 증인 모두를 그 하루동안 모두 부를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쟁점에 대한 정확한 공방이 이뤄져야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9일 재판에서도 검찰측 핵심증인이 개인 사정으로 출석할 수 없다고 심리당일 밝혀와 공판진행 자체를 어렵게 했다. 재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출석을 설득하자 뒤늦게 법정에 나와 증언해 공판절차가 계속 진행되긴 했지만 증인소환문제가 가장 큰 문제라는 점을 방증하기도 했다.

변호인의 일부 준비소홀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피고인측 증인으로 나온 경찰관이 사실은 해당사건과 별 관련이 없어 증언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다.

변호인이 증인에게 “그럼 그날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하는가 하면 심문 중간에 재판장에게 “증인을 잘못 부른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또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도 피고인신문시 피고인에게 “위법한 점이 있다면 반성하고 있죠?”라고 질문해 재판장으로부터 “그런 질문은 공소사실을 인정한 피고인들에게 하는 것”이라는 주의를 받고 철회하기도 했다.

결국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한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의 철저한 준비 등 협조관계가 필수적인 셈이다.

◇ 위증방지 보완책 마련도 절실= 문제는 또 있다. 고질적인 증인들의 위증문제다. 공판중심주의는 법정에서 현출된 증거를 중심으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증인의 진술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재판이 이뤄져야할 필요성이 더 높다.

모든 사법절차에서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위증은 공판중심주의 최대의 적(敵)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재판장들은 새 재판모델진행에 앞서 “판사들이 그날 현장에 없었으니 그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여러분의 증언이 필요한 것이다.

기억나는 것만 사실대로 이야기해 달라. 확실하지 않은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기억나는대로만 말해 달라”며 증인들을 상대로 장시간을 들여 위증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실제 8일 이 재판부가 새 재판모델에 따라 진행한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에서는 증인으로 나온 고소인의 운전기사가 범행현장을 목격했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실제로는 고소인으로부터 받아 날인하고 서명해 줬음에도 “(사실확인서를)내 딸이 작성한 것이다.

경리여직원이 복사해서 줬다”고 진술을 번복하다 재판장의 거듭된 추궁에 “고소인으로부터 받았다. 직원으로서 고소인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했다. 죄송하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해당사건의 재판장은 속기사를 뒤에 배석시켜 실시간으로 증언을 기록해 조서로 작성하면서 이상한 부분이 생기면 일단 증인을 다른 장소에 격리시킨 뒤 다른 증인을 불러 확인하는 방식을 취했다.

증언이 엇갈리면 앞서 진술한 증인을 출석시켜 두 사람을 대질시킨 뒤 진실을 가려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증인들의 위증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떤 재판모델도 무용지물”이라며 “새 모델이 신속하고 충실한 재판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높겠지만 증인들의 위증을 걸러내지 못한다면 겉만 빛나고 알맹이는 없는 제도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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