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숱한 별명을 달고 다니는 이재오 특임장관은 민생현장을 둘러보는데도 소홀함이 없지만 새해 들어 부쩍 개헌의 당위성을 설파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마, `무관(無冠)'으로 유랑생활과 야인생활을 거친 뒤 작년 7.28 재보선을 통해 정계로 복귀하자마자 특임장관에 임명된 그는 이달 말이면 취임 6개월을 맞는다.
최근 "개헌을 위해 가장 강력한 상대인 골리앗과 맞서겠다"는 의지를 공개 피력해 분분한 추측을 낳고 있는 이 장관을 정부중앙청사 집무실에서 만나 다들 안 된다는 개헌이 어떻게 올해 안에 가능하다는 것인지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개헌은 시대적 과제이고, 23년전 구체제의 헌법을 지금 바꿀 때가 됐습니다. 또한 17대 국회 때 정치인들이 국민과 한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큰 선거가 없는 금년이 개헌의 적기입니다."
개헌 논의의 `시의 적절성'과 `당위성'을 강조하는 도중에 이 장관은 겉 표지에 `개헌 노트'라는 제목이 붙은 공책 한 권을 수시로 들추어 보았다.
`개헌 노트'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작년 8월30일 특임장관에 취임하고 다음날인 9월1일부터 이 노트를 쓰기 시작했어요. 왜 개헌 논의에 들어갔는지에서부터 헌법 전문, 개헌 논의과정, 외국의 사례, 우리 헌법의 어떤 점을 구체적으로 고쳐야 하는지 등에 대해 죽 써온 겁니다."
최근 들어 거의 매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고 있는 `개헌 단상'도 `개헌 노트'를 작성하면서 축적된 아이디어의 일부분이라고 한다. 이 장관은 이 `개헌 노트'를 펴 보이며 이 대통령이 2009년 8.15 경축사부터 지난 1일 신년방송 좌담회까지 모두 8번에 걸쳐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음을 소개하기도 했다.
특임장관이 개헌논의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배경설명으로 이해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정치 선진화를 위한 개헌 논의를 국회에 당부했습니다.
특임장관에 취임하기 전에만 이 대통령이 5차례 국회에서 논의해 달라고 했는데도 안 됐으니까 내가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만약 그 전에 다른 사람이 대통령 당부대로 개헌 논의를 시작했다면 내가 나설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개헌 드라이브가 정략적'이라는 일부 정파의 지적에 대해서는 결코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장관은 "헌법을 바꿔야 국가와 국민이 내일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정치개혁의 기본틀을 만들 수 있다. 반드시 이 시기에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특임장관의 이름을 걸고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수행하는데, 여기에 무슨 정략적 의도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4대강 전도사'에 이어 얻은 `개헌 전도사'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4대강이 다 돼가니까 뭐 전도할 게 없나 생각했는데 끊임없이 개헌 당위성을 설파하다 보니 `개헌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골리앗을 물리치고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된 다윗에 자신을 비유한 이 장관이 내년에는 어떤 정치행보를 보일까? 넌지시 `개헌 전도사'의 역할이 끝나면 다음에는 무슨 전도를 할 거냐고 물었더니 "한나라당에 개헌특위만 구성되면 1차적으로 `개헌 전도사'의 역할은 끝난다"면서도 끝내 질문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은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할 얘기가 많은 듯한 눈치여서 적지 않은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이미 개헌노트의 3분의 1가량을 빽빽하게 채운 이 장관에게 "`개헌노트'를 어느 정도 채워야 개헌이 될 것으로 보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이 노트의 마지막 장을 채우면 개헌이 되지 않겠느냐"면서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다음은 이 장관과의 일문일답.
-- 취임 6개월을 평가한다면.
▲ 6개월이 하루같이 지나갔다. 정부가 꾸준히 하나의 원칙을 갖고 흔들림 없이 했고 저도 이 대통령의 기본 원칙과 철학에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관되게 해왔다.
-- 다들 안된다고 하는 개헌을 왜 계속 밀어붙이는가.
▲ 첫째, 개헌은 시대적 과제이고 소명이다. 국가와 국민이 내일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정치개혁의 기본틀을 만들 수 있다. 둘째,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개헌을 제의했을 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18대 국회에서 할테니 철회해달라고 했고 노 전 대통령도 당론이니까 믿고 철회했다. 지난 시절 정치인들이 국민과 한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 셋째, 금년이 적기다. 올해 대선판이 조기 가열되면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 정책, 일자리 창출, 복지, 남북 문제 등 국가와 국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을 못하게 된다. 국가와 국민이 손해다. 한편으로는 개헌을 논의하고 한편으로는 예정된 국정을 수행하는데 가장 무리가 없는 시기다. 그래야 다음 정권도 부담없이 국운을 융성시킬 기회를 갖게 된다.
-- 개헌을 추진하다 당이 분열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 정당이 그렇게 쉽게 분열되지 않는다. 토론을 통해 합의를 보는 과정에서 자기 의견이 채택되지 않았다고 당을 뛰쳐나가거나 깰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그 정도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 개헌이 `박근혜 죽이기'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 공작적인 시각이다. 지금 개헌론을 `특정인 죽이기'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현재 권력 그대로 다 독식해서 실패한 정치를 되풀이하겠다는 것 밖에 더 되겠느냐. `특정인 죽이기'라는 것은 대통령 후보가 됐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밖에 얘기가 안 된다. 아직 그런 단계까지 안 왔다. 개헌하자는 사람에 대한 음해다.
-- 이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 일이 수월하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는가.
▲ 이 대통령이 그동안 개헌해야 된다는 얘기를 무려 8번 했다. 2009년 8.15 경축사, 9월1일 한나라당 여성의원 오찬, 9월15일 한일 통신사 인터뷰, 2010년 2월25일 취임 2주년 한나라당 당직자 오찬, 8.15 경축사, 11월3일 G20 내외신 기자회견, 11월23일 당.청 간부 만찬, 그리고 2011년 2월1일 TV 대담 등이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의견 통합이 안 되는데 대통령이 개헌 발의했다가 국회 열어서 폐기하면 대통령 끌어들여서 개헌 논의 죽이겠다는 것 밖에 더 되는가. 이런 식으로 정치하면 정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 여론은 아직 개헌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 만약 대통령 임기를 늘리거나 연임하자고 하면 국민은 당연히 관심을 갖겠지만 지금 개헌은 그게 아니다. 미래에 국민과 국가를 편하게 하는 헌법을 만들자고 하니까 관심이 당장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론 조사를 해보면 60% 이상이 찬성한다.
-- 연말까지 현실적으로 개헌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 가능하다. 아직 민주당이 개헌 논의에 반대하지만 총선과 대선이 가까울수록 개헌을 논의할 수 밖에 없다. 시대적 과제가 개헌인데 이것을 외면하고 가겠는가. 여론조사 해보면 민주당이 개헌 논의에 참석하라는게 60% 이상이다. 야당이 논의에 합세하면 이미 연구된 게 많기 때문에 급속히 진행된다. 그럴 경우 금년 안에 된다.
-- 여야 합의를 촉발할 수 있는 복안은 있나.
▲ 지금은 야당 의원들과 많이 접촉하는데 개인적으로 만나면 다 개헌 찬성이다. 다만 지금 시간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정치적 환경만 조성되면 야당도 개헌하리라고 본다. 내가 할 일은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 개헌을 위해 가장 강력한 상대로 거론된 `골리앗'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 골리앗은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면서 개헌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골리앗이 여자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골리앗은 진짜 나쁜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부수기 위해 고용한 장군, 용병이다. 다윗은 양을 지키다 울분에 못 이겨서 돌멩이 5개를 들고 가서 골리앗 장군을 친다. 골리앗이 특정인이라며 나에게 온갖 험담을 다 하는 사람들은 성경이나 한번 읽어 봤으면 좋겠다.
-- 박근혜 전 대표가 과학벨트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 책임' 발언을 했는데.
▲ 어떤 결정이든 대통령 개인, 장관이 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책임질 결정이 아니다. 법대로 결정하는데 누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정치적 결정을 예단하고 하는 얘기니까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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