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직 과학적인 진실만을 추구한다.’
최근 종영된 SBS 드라마 '싸인’에서 무수히 나왔던 국과수의 모토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권력을 등에 업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증거가 조작되고 고인의 마지막 사인(死因)마저 그들의 이익에 유리하게 이용되는 등 온갖 비리가 난무하는 사건이 지속된다.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판치는 세상.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사인을 조작하기는 훨씬 쉬운 셈이다. 국과수의 모토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나름의 좋은 문구이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신념대로 스스로 희생함으로써 진실을 밝히며 드라마는 끝이 난다. 죽음으로써 해피엔딩을 바라는건 아이러니하지만 요즘 다시 수면위로 떠올라 논란이 되고 있는 ‘장자연 리스트’가 드라마처럼 속 시원히 밝혀질지는 의문이다.

‘장자연 리스트'는 신인 탤런트 장씨가 2009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유력 인사들의 명단을 말하는 것으로, 최근 장 씨가 친필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편지가 공개되면서 다시 파장이 일고 있다.

‘무명에 가까운 내가 죽어도 세상이 눈 하나 깜빡 하겠어…’라는 글을 보며 끝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지막마저 지켜주지 못한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살아서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죽어서도 참으로 박복하다. 그녀는 무얼 말해주고 싶었던 걸까.

참고인만 118명이었던 최대 수사였음에도 모두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지 뒤가 찝찝하다.

이번 편지는 2년 전 문건보다 훨씬 방대하고 구체적이어서 장 씨가 직접 쓴 것으로 최종 판명만 된다면 성상납과 술 접대 강요, 사회 유력자 연루 여부 등과 관련된 의혹을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려고 하는 순간 관련된 사람이 숨어버리거나 벌써부터 편지조작설 운운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며 그녀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힘 있는 자와 없는 자 중 있지도 않은 사실을 어떤 이가 죽음으로까지 밝히고 싶었을지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일부 조작 흔적이 발견됐다는 편지가 만약 가짜라면 사건 당시 발견되었다던 50통의 편지가 이제와 밝혀지는 이유는 무엇이며 누가 조작을 한 것인가. 어느 것이 진실이고 누가 과연 조작을 했을지는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 꿈을 이용해 대가로 성상납을 강요하고 그게 버젓이 관행 되어야만 하는 현실이 슬프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 온갖 더러운 일들이 공공연하게 행해오는, 상상 그 이상인 더러운 연예계라는 말을 인증하는 꼴이다.

조작을 조작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진실은 승리한다’는 진리를 믿어보고 싶다. 어쩌면 갑작스런 자연재해로 이번논란이 묻히는 것에 대해 지금 누군가는 일본에게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두려워서 수사조차 못하는 건지 당당하다면 명명백백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서 고인의 한을 풀어주길 바란다. 

정달해 인턴기자  autumn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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