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안동시는 `무대가 좁고 시설이 낡았다'는 이유로 1천석의 대공연장과 288석의 소공연장을 갖춘 안동문화예술회관을 새로 짓고 있다. 공사비는 495억원이다.
이 대공연장은 독일식 무대개폐장치를 사용하는 등 유럽산 고급설비를 들여와 대형 오페라 공연까지 가능하다. 회관 내에는 국제경기가 가능한 24레인의 볼링장과 4개 국 동시통역이 가능한 국제회의장도 지어진다.
문제는 시민들이 내야 할 세 부담이다. 이 사업은 민간사업자가 지어 지자체에 임대해 주는 민간투자사업(BTL)으로, 시는 20년간 사업자에게 임대료 등을 지불해야 한다. 그 돈을 모두 합치면 무려 1천300억원으로 공사비의 3배에 가깝다.
시 관계자는 "회관 건립에 필요한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았던데다 국비와 도비 200억원을 받을 수 있어 BTL 방식으로 했다"고 말했다.
◇ 일부 지자체 문예회관 `도 지나쳐'
소외지역의 발전과 문화 저변 확대라는 명분을 내걸고 전국 지자체마다 문화예술회관 건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문화예술회관을 새로 짓거나 기존 회관을 리모델링하는 지자체에 국비가 지원된 곳은 올해 21곳에 달한다. 2007년에는 7곳, 지난해는 4곳의 문화예술회관이 완공됐다.
문화예술회관에 대한 국비 지원은 최대 20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시비나 군비 등의 지자체 예산으로 해야 한다.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예산 절감에 최대한 노력하고 중복ㆍ낭비 투자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강원 인제군은 367억원을 들여 지난 8월 공연장과 스포츠센터 등을 갖춘 `인제 하늘내린센터'를 개관했다.
연극, 뮤지컬은 물론 오페라까지 가능한 이곳의 극장 제어부는 독일산, 무대장치는 이탈리아산, 조명시설은 일본산 등으로 이뤄졌다. 국내 어느 문화시설과 견줘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686석에 달하는 대공연장은 연중 대부분 비어있다. 한달에 각각 한번씩 예술 공연과 영화 상영을 할 뿐이다. 개관 후 지금껏 외부 대관은 딱 한번 있었다.
인제군문화재단 관계자는 "예산 사정상 한달에 한번 이상 공연하기는 힘들다. 오페라 공연의 경우 1년에 한번 정도 공연이 가능할 것이다. 지역 사정상 대관 실적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인제군의 인구는 3만2천명으로 지난해 재정자립도는 전국 지자체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892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200석 규모의 소공연장을 갖춘 제주도문예회관이 있는 제주시도 `제주아트센터'를 새로 짓고 있다.
시 관계자는 "제주시민회관이 너무 낡아 새로 지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예술 공연이 가능한 시설을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주도문예회관도 2004년부터 3년 간 리모델링을 해 오케스트라, 뮤지컬, 오페라 등의 각종 공연이 가능하다.
제주아트센터의 경우 2006년 1월부터 공사가 시작돼 4년째 짓고 있으나 마지막 예산 확보에 진통을 겪어 올해 말 완공 여부도 불투명하다.
제주시민 오모(61)씨는 "제주아트센터를 짓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기존 제주도문예회관도 충분히 활용되는 것 같지 않은데 굳이 새 시설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전남 장성군은 총 900석 규모의 장성문화예술회관을 짓고 있으나 인접한 광주시 운암동에 1천700석의 대공연장을 갖춘 광주문화예술회관이 있어 "중복투자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지자체들 "소외지역 배려해야" 반론
해당 지자체들은 소외지역에 대한 배려와 지역 발전을 꾀해야 되지 않느냐며 문화예술회관 건립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인제군 관계자는 "농어촌 지역의 문화예술사업은 어차피 적자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사업성이나 수익성을 따지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안동시 관계자도 "기존 시민회관의 경우 무대가 작아 대형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을 유치하기 힘들었다. 새 회관이 들어서면 대형 공연을 활발하게 유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시도 관광지라는 지역 특성이 있는 만큼 제주도문예회관과 제주아트센터 두 곳의 공연장을 모두 채울만한 충분한 관객 수요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저출산, 농가 보조, 복지정책 등 시급한 현안들이 많은 상황에서 지자체들마다 경쟁적으로 대형 공연장 건립에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의 최인욱 예산감시팀장은 "지자체 문예회관 중에는 단체장의 치적 쌓기를 위해 지역 수요에도 맞지 않는 대형 시설을 건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업 구상 단계 때부터 철저한 수요 조사와 타당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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