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김 "비노드가 직접 소라 합류 요청"

"인텔에서 중요한 일을 하면서 모든 것이 순조로웠는데 비노드 코슬라가 직접 찾아와 소라에 합류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고민 끝에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제조업체인 소라의 최고경영자(CEO) 에릭 김(57.한국명 김병국) 씨는 9일(현지시간)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외곽 프로몬트 지역에 위치한 소라 본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이뤄지는 조립부문을 제외한 전 제조공정이 가능한 LED 제조공장까지 갖춘 곳으로, 깔끔하게 정비된 빌딩에서는 벤처기업의 젊은 기운이 넘쳐났다.

벤처기업 CEO 답게 브이넥 셔츠의 평상복 차림을 한 김 씨는 기자를 곧바로 회의실로 안내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사 제품과 경쟁사 제품을 일일이 직접 시연해 보이고, 관련 연구보고서도 제시하는 등 자사 제품의 우월성에 자신감을 내보였다.

김 씨는 "LED가 각광을 받는 것은 에너지효율이 기존 제품에 비해 80%나 높기 때문이지만 지금까지 색감 등이 좋지 않아 제한적으로 사용됐다"며 "하지만 소라 제품은 유일하게 할로겐 램프에 견줄 수 있는 색감까지 갖췄다"고 소개했다.

11살 때 미국으로 이민온 그는 애초 한국말로 질문하면 영어로 답을 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유창한 한국말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삼성전자에 5년간 근무하면서 한국 문화와 함께 한국말을 익혔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씨와의 일문일답.

-- 삼성전자와 인텔 등 글로벌 IT대기업에서 일하다가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 2010년 인텔에 있을 때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사내에서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유명벤처투자가인 비노드 코슬라가 직접 찾아와 소라 합류를 제안했다. 그는 소라가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과 관련해 획기적인 혁신을 한 회사라고 소개했다.

개인적으로도 게임이나 소셜네트워킹 등 다른 첨단기술보다 에너지와 환경이 미래사회에서 훨씬 중요할 것이라고 판단해 비노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16개월 난 손자가 컸을 때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에너지와 환경분야에 기여하는 것이 맞는다고 봤다.

또 조명이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전 세계 전력의 25%를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은 140년 전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후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명업계 측면에서 볼 때 진정한 혁신은 LED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10년래 전 세계 조명은 모두 LED를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일반 가정의 3% 만이 LED를 사용하는 등 아직 초기단계이다. 절전이 중요한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등은 LED를 많이 쓰고 있지만 공간조명으로 쓰기에는 밝기나 빛의 질이 낮고 가격도 너무 비싼 편이다.

따라서 기술개발이 필요한데 소라 창업자인 나카무라 수지가 차세대 기술을 개발, 창업한 것이어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봤다.

-- 벌써 50대 후반인데 새로운 도전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개인의 능력과 나이 간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을 사랑하는 열정이 핵심이다. 항상 도전을 즐겨왔다. 즐기지 못하면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대로 힘들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기게 되고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 돈을 버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보람있고 파급효과 크고, 사회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은 나이와 관계없다.

지금 이런 기회가 왔다는 게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냥 '나인투파이브(9to5)' 식으로 일해 오지 않았다. 항상 도전할 수 있는 것을 찾았고 실제로 그 문제를 해결할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다.

-- 소라가 코슬라 등 벤처캐피털로부터 1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 현재 시장 규모가 1천억 달러나 되는 만큼 벤처투자가의 입장에서 가능성 있는 신기술에 1억 달러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소라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 세계 최고의 조명기구 제조업체로 키워내고 싶다.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필립스, GE, 오스람 등 현재 시장에 있는 주요 경쟁사들이 모두 전통적인 기술에 의존하고 있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 이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벤처기업에서 근무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벤처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94년에는 파일럿소프트웨어라는 벤처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한 적도 있어 벤처회사가 생소하지는 않다. 다만 대기업은 조직도 크고 일도 구조적으로 잘 짜여져 있지만 벤처기업은 그렇지 못해 각자가 알아서 해야할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1999년 삼성의 브랜드 관리 총책을 맡아 삼성 브랜드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 당시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삼성도 구조조정 이후 다시 일어설려고 할 때였다. 삼성전자가 영입제안을 했다. 당시 한국 기업 삼성에서 일하는 것은 모국인 한국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자녀들이 10대였는데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한국에서 살아보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이들이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점을 감안해 5년후 미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삼성과 계약도 5년으로 했다. 삼성이 계속 남아 주기를 원했지만 당시 만해도 (삼성의) 해외조직이 약해 미국내 근무할 수 있는 삼성조직이 없었다. 그래서 인텔로 옮기게 됐다.

-- 삼성 근무 당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는다면.

▲ 11살 때 이민을 왔기 때문에 당시 한국이나 한국기업 문화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한국말도 잘 못했다. 거기(삼성)서 많이 배웠다. 삼성이 톱기업인 만큼 업무적으로도 많이 배웠다.

-- 한국에서는 인텔에서 활약하신 부분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텔에서도 상당한 변혁을 꾀했다고 들었다.

▲ 스마트TV가 지금 대세인데 그 개념을 인텔에 있을 때 처음 개발했다. 이후 이 개념이 구글이나 소니, 삼성전자와 LG 등에서 진화되고 있다. 그전에는 인텔에서 1년 정도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일했다.

-- 한국에 진출 계획이 있는지.

▲ 당연히 고려대상이지만 일단은 미국과 일본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LED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번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했기 때문에 전기공급이 20% 정도 줄었다. 따라서 절전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어 LED 수요가 많아졌다.

-- 한국기업과 미국기업의 기업문화 중에서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 문화차이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이 다르다. 한국 기업의 장점은 운영이 조직적이어서 매우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일단 결정되면 빠르게 추진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한다. 이에 비해 미국 기업들은 느리지만 훨씬 창조적이다. 느리지만 기술적인 혁신은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 주로 실리콘밸리에서 거주한 셈인데 실리콘밸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면.

▲ 82년 대학졸업후 줄곧 여기(실리콘밸리)서 살았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이 잘 일어난 곳이다. 또 고위험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과 장소, 자금이 넘쳐나는 곳이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실패가 용인되는 곳이다. 어떤 성과를 얻어내려면 실패의 경험이 있어야한다.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는 실패하면 끝이다. 그다음엔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 심지어 감옥까지 간다. 이 곳은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실패를 장려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패하면 다시 하면된다. 나 역시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심지어 실패하면 투자자들이 더 많이 온다.배운 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창업을 위해 한국의 기업문화 또는 한국의 제도 가운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지.

▲ 쉽지 않은 질문이다. 우선 책에서 얻을 수 없는 '틀 속에 갇혀있는 생각'에서 벗어나야한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도와줄 수 있는 인프라, 투자 자금이 있어야하는 등 실리콘밸리식 시스템을 갖춰야한다. 벤처기업을 정부차원에서 지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시장은 그대로 놓아두고 실패를 받아들이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는 게 자금 등을 지원해 주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