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관객들이 이 무용단의 춤을 보고 환호한다. 힙합적인 움직임으로 절로 몸을 흔들게 하는 흥겨움만 있어서가 아니다. 춤에 대중성이 있으면서 깊이와 울림이 병존한다. 무용수들의 정교한 움직임이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면서 뜨거운 열기와 힘을 분출해낸다. 몸짓 속에는 삶의 애환이 녹아 있다.
이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김보람. 그는 현대무용을 막 시작한 2008년에 CJ 영 페스티벌에 참가해 '에브리바디3'이라는 무용으로 최우수작품상을 탔으며, 2009년에는 춤비평가상 연기상, 2010년에는 평론가가 뽑은 젊은 안무가 최우수작품상(바디 콘서트), 같은 해 다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서울댄스콜렉션에서 최우수작품상(공존)을 수상했다. 평단이나 관객들로부터 20대의 젊은 무용인인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는 아직도 30이 채 안 됐다.
그 덕에 김보람과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이런저런 무용 축제나 행사에 불려다니느라 바쁘다. 가장 최근에는 일본 후쿠오카 공연에 이어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 국내초청작의 하나로 '바디 콘서트'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서 선보이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김보람을 지금 이 순간 얽어매는 중요한 일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한국공연예술센터가 마련한 '한팩 솔로이스트' 프로그램으로 발레무용수 김용걸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서 추게 될 '그 무엇을 위하여…'의 안무 작업. 다른 하나는 국립발레단이 올해 창단 50주년 기념작으로 이달 29일부터 무대에 올리는 컨템포러리발레 대작인 '포이즈'(안무 안성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에 무용수로서 참가하는 것이다.
스타 발레리노의 초청에 의한 '그 무엇을 위하여…'의 안무, 주역은 아니지만 특별한 군무 무용수의 일원으로서 국내 최고의 공연공간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 위에 선다는 것. 이런 일들은 김보람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저 남도의 끝자락 완도에서 마이클 잭슨 또는 마돈나 같은 대중가수들의 백(업)댄서가 되는 것을 꿈꾸던 소년 시절의 김보람을 생각하면 그렇다. 일전에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김보람을 만나 무용단 이름 만큼 흥미로운 그의 춤 이력과 그가 추구하는 춤의 세계에 대해 들어볼 기회를 얻었다.
-- 현대무용의 꿈을 언제부터 키웠나.
▲대학 진학 때까지는 사실 현대무용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다. 완도초등학교 3학년 때 랩가수 현진영의 춤을 따라 추기 시작한 때부터 훌륭한 백댄서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고향 완도에서 고2 때 상경, 학교에 다니면서 프렌즈무용단이라는데 들어가 백댄서로 활동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엄정화· 이정현·조성모 등 여러 가수의 백댄서 역할을 했다. 미래에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 같은 팝스타들의 백댄서가 되고 싶었다. 미국에 가려 했는데 미국 비자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학생 자격이면 학생비자로 미국 가기가 쉬울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는 대학 갈 생각이 없었는데 비자도 쉽게 얻고, 무용의 기본도 배울 겸 해서 서울예대 무용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당시 서울예대 김기인(2010년 작고) 교수님이 "한국 것을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만류하는 바람에 미국행은 보류했다. 대학 때 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 같은 거를 다 배웠으나 2005년 졸업 후에도 2년간은 방송댄스와 힙합을 주로 했다.
-- 그러면 현대무용은 언제부터 했나.
▲2007년에 다시 미국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김기인 교수님이 후배 서울예대 학생들이 대학무용제인 생생 춤 페스티벌에 참가하려 하니 작품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 해 보는 거라서 부담도 됐지만 "내가 생각하는 춤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업했고 학생들이 열심히 해 줘서 안무하는 게 무척 재미있었다. "무용을 계속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안성수픽업그룹에서 활동하던 김설진(현 벨기에 피핑탐 무용단원) 형이 벨기에로 가면서 나를 안성수 선생님에게 소개했다. 고민하다 1년만 안성수픽업그룹에서 해 보고 미국에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막상 선생님하고 작업해 보니 1-2년 가지고는 흉내도 못 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2008년에 안성수픽업그룹에 들어간 이후에는 방송댄스는 전혀 하지 않았고 '장미', '짝짓기춤', '싯점' 같은 안성수 선생님 작품에 출연하면서 현대무용을 본격적으로 췄다.
-- 춤을 추면서 안무 작업도 병행한 것인가.
▲생생 춤 페스티벌이 끝난 후 자신이 붙어 2008년에 CJ 영페스티벌에 '볼레로'를 배경음악으로 한 작품을 만들어 참가했는데 최우수작품상을 타게 됐다. 상을 받고 나니까 내 작품에 대한 평가도 많이 나오고, 배경음악을 잘 썼기 때문에 작품이 호평을 받았다는 얘기도 사람들이 했다. 그래서 음악을 잘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당시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가사 속에 반영된 다이나믹듀오의 '불면증', 지오디의 '길', 조성모의 '가시나무'를 배경음악으로 한 '소울'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소울'은 내가 만든 '어처구니'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데 그때는 내가 사는 게 너무 어처구니없는 것 같아서 그런 개념 아래 '언어', 'MIstake' 같은 춤을 계속 만들었다.
-- 안무하면서 음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음악을 분석해 음악 안의 소리를 표현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한다. 음악은 소리가 모여서 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춤을 만드는 게 아니라 움직임으로 소리를 만든다. 무용수들에게도 음악이 아니라 소리를 표현해 보라고 한다. 남다른 내 습관은 작품 제목을 먼저 정하는 거다. 다음에 음악을 선정하고, 그 후에는 정신없이 막 만들어놓고 음악들 사이에서 거기에 맞는 춤을 연습하고 구성하다 보면 내가 처음에 얘기하려고 했던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음악은 장르 가리지 않고 다 즐긴다. 클래식도, 힙합도.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는데 좋은 음악을 들으며 리듬을 생각하거나 장면들을 그리는데 딱딱 떨어질 때가 있다. 그림을 보는 것처럼.
-- 무대에서 춤을 출 때 늘 선글라스나 수경 같은 것으로 눈동자를 가리고 모자를 쓰고 나오는데 독특한 스타일을 살리기 위한 것인가.
▲'바디 콘서트' 때는 물안경을 썼다. '공존' 때는 선글라스, '언어' 때는 펜싱 마스크 같은 걸 썼고, 'MIstake' 때는 검은 봉다리를 뒤집어썼다. 여하튼 머리랑 눈을 항상 가린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때 가장 큰 힘이 되는 게 눈이다. 그만큼 눈으로 표현해 버리면 쉽다. 그걸 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눈을 가리는 것이다. 슬픔과 기쁨을 눈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모자를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나는 소리를 잘 표현하는데 예민한 편이다. 춤을 추면서 머리카락이 흩날리면 0.3초, 0.5초 사이로 소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의상도 몸의 표현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나풀거리는 옷은 입지 않는다. 무용수들의 몸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배아래 단전이다. 단전으로 춤을 추기 위해 노력한다.
-- 방송댄스·힙합을 하다 현대무용을 하고, 또 발레 영역에까지 들어가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발레와의 인연을 소개해 달라.
▲대학 때 '모든 춤의 기본은 발레'라는 얘기를 많이들 해서 대학 때도 발레수업을 많이 들었고. 발레를 배우러 학원에도 다녔다. 그런데 발레에 정이 붙지 않았고 "왜 이런 걸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도 종종 들었다. 그런데 안성수픽업그룹 단원이 되고 발레를 배우면서 재미를 느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안 선생님 발레 강의를 계속 청강하면서 발레를 익혔다. 예전에는 괜히 땀만 나고 뭔가 해소가 안 됐었는데 선생님 수업 들은 후에는 재미있어졌다. 김용걸 선생님이 춤을 춘 '그 무엇을 위하여…'의 경우는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지난해 1월 김 선생님이 내게 직접 전화를 해서 안무 작업을 하게 됐다.
-- 이번에 국립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작인 창작발레 '포이즈'에 출연하는데 어떤 역할을 맡은 것인가.
▲나를 포함해 안성수픽업그룹 단원 네 명이 함께 카메오 식으로 중간중간 등퇴장을 반복하며 춤을 춘다. 안 선생님 말씀으로는 우리가 클래식발레인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광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안무 동작으로 볼 때 우리들의 몸의 움직임은 하체는 발레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상체는 다른 형태를 얹은 것이라고 한다. 국립발레단의 무용수들과 같은 동작을 하기도 하고, 다른 동작을 하기도 한다.
-- 이번에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바디 콘서트'를 보면서 "국내 관객뿐 아니라 해외로 진출해 현대무용의 한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해외에서 공연 전망은 어떤가.
▲지난해부터 해외공연에 관심을 두고 이곳저곳에 기획서와 신청서류를 내고 있다. 그래서 성사된 것이 일본과 러시아에서의 공연이었다. 후쿠오카프린지페스티벌에서 공연이 반응이 좋아서 얼마 전에 다시 후쿠오카의 다른 연극페스티벌의 무용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러시아에서는 현대무용제인 듀엣페스티벌에 그 축제 사상 첫 아시아무용단 초청으로 다녀왔다. 사실 '바디 콘서트' 같은 경우도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안무한 작품이다. 해외에는 계속 나가 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내게는 그런 작업이 무척 어렵다. 어렸을 적부터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춤이었고, 그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해외공연 기획서 하나 만드는 것이 너무 힘들다. 기획능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작품을 관객이 어떻게 즐겼으면 하나.
▲머리 또는 지식으로 우리의 춤을 이해하려 하면 그런 관객에게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춤은 영원히 '애매모호' 할 수밖에 없다. 마음으로 우리의 춤을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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