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는 피부색이 희거나 검은 외국인의 모습도 여럿 보였고, 그들 가운데서 수박도(手博道) 도복 차림의 미국인 마크 팰러드리(47)와 샌드라(46)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스포츠형으로 짧게 친 금발에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팰러드리는 도복 허리에 맨 암청색 띠에 대해 묻자 "태권도의 검은 띠와 같은 유단자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박도를 12년째 수련한 고수이며 아내 샌드라 역시 10년 넘게 수련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태권도의 뿌리로도 일컬어지는 수박도는 고구려와 고려시대에 널리 성행했던 전통 무예이지만 지금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인기를 얻고 있다.
팰러드리도 수박도와의 인연을 미국에서 처음 맺었다고 한다. 그는 "1997년 고향인 샌디에이고의 한 도장에서 수박도를 처음 접하고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웠지만 수박도와는 달랐어요. 태권도를 배우면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수박도에서 그걸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권도는 발차기 기술과 대련처럼 신체적인 외공(外功)을 중시하지만 수박도는 여기에 내공(內功)과 심공(心功)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한국말로 하는 구령과 동작이 유사하면서도 호흡법을 통해 내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는 내공과 정신을 강하게 만드는 심공은 태권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1년 3개월 전 미국생활을 접고 아예 수박도의 종주국인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팰러드리 부부가 얼마나 수박도에 심취해 있는지 몸으로 전해졌다.
일주일에 나흘씩 용산에 있는 도장을 찾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쪼개 서예와 수묵화, 한지공예를 배울 정도로 한국 문화에도 흠뻑 젖어 있다.
수박도의 유단자에게 주어지는 띠의 색깔이 검정이 아닌 암청색인 것에 대한 그의 설명은 무척 흥미로웠다.
"수박도의 수련자 등급이 10개의 급과 9개의 단으로 이뤄진 것은 태권도와 같지만 유단자가 검은색 띠 대신 암청색 띠를 매는 것이 다릅니다. 완벽함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달리 암청색은 무도에서 절대 완벽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일깨움과 함께 겸손을 나타내는 것이죠."
팰러드리 부부는 "연말에 미국으로 돌아가 성탄절 연휴를 보내고 나서 호주와 유럽 등 전 세계를 차례로 돌며 수박도 도장을 찾아 무예를 꾸준히 다듬을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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