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경제학 창시자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슴(invisible heart)'이 작동하는 체제를 만들어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한 교수는 '토건국가에서 돌봄 사회로'와 같은 글을 통해 외형적·양적 성장 중심주의에서 탈피해 관계 중심의 사회, 돌봄 중심의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다음은 조한 교수와의 일문일답.
-- 1~2인 가구는 늘고 핵가족은 붕괴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뭔가.
▲기본적으로 고용의 문제를 들 수 있다. 핵가족은 1명(가장)이 2∼3명의 부양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안정된 평생직장, 아이들을 키우고 부부가 노후에 잘 살 수 있는 경제 체제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어려워져 맞벌이할 수밖에 없고 빈곤층, 무직, 프리랜서, 비정규직, 실직 등 거의 기본생계가 어려운 사람들도 엄청나게 늘었다.
이제는 저성장 사회다. 성장을 하더라도 고용이 없는 성장이다. 고용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정책으로는 핵가족이 지탱될 리 없다.
-- 그래서 복지 체계가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복지 체계 역시 여전히 핵가족 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취업한다는 가정 아래 이뤄지는 복지 체계다.
-- 핵가족 해체에 경제적인 것 말고 다른 원인은 없나.
▲물론 있다. 문화적 변수로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자의식, '모든 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소비와 투자 마인드를 갖게 된 점이다. 예전에는 친척과 이웃, 친구들과 상부상조하고 호혜 관계로 살았는데 요즘은 이런 관계를 형성할 줄 모르게 됐다.
입시교육도 문제의 요인이다. 자기 삶을 꾸린다거나, 일이 터졌을 때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을 못하고 공부라는 활동만 하면서 자라 사회성이 키워지지 않았다. 1980년대 학번까지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친구에게 신세도 지고 살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남에게 손을 벌리지도, 남을 도와주지도 못한다.
지금 교육은 소수의 정규직을 키우는 교육일 따름이다. 그 정규직도 실은 오래가지 못하는 일자리다. 교육은 취직이 아니라 자활, 스스로 자기 삶을 꾸려가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
또 고액연봉자의 경우도 근로시간이 너무 길고 힘들어서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주로 고액연봉의 전문직 여성 중에 많지만 그러한 남성도 증가세다. 그렇게 가족과 지낼 시간이 없다면 결혼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사람끼리 모여 살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 그게 꼭 '혈연 중심'의 가족일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는 손', 즉 돈의 분배를 얘기했는데 '보이지 않는 가슴'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앞으로 그것이 작동하게 하는 체제가 뭔지 찾아야 한다.
기존의 가족 형태는 해체되겠지만, 가족 비슷하게 서로 돌보는 '돌봄의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문제다.
-- 돌봄 사회가 바로 그것인가.
▲이미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사랑방 등 다양한 이름으로 공동 육아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돌봄·육아의 사회화가 이뤄져야 한다. 여성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여성이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육아도 기존 토건사회에서처럼 시설에서 '전문가'들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장화하지 않는 형태의 공공적 노동이 돼야 한다.
예컨대 밖에 나가 일해야 하는 엄마는 일하고, 그렇지 않은 엄마는 자기 아이와 함께 남의 아이도 키워주는 것이다. 지역공동체가 형성되고 작은 공간만 있으면 가능하다.
그때 주변에서 아이를 많이 키운 할머니들과 육아 전문가, 그리고 보육을 전공한 이들이 옆에서 도우면 된다. 국가는 이처럼 돌봄을 제공하는 어머니들에게 일정한 급여와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재정 지원의 방향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 당장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워 보이는데.
▲경쟁교육만 받은 탓에 엄마들이 다 그러한 교육과 소비사회의 산물이다. 그래서 쉽지는 않다. 우리도 이를 일률적으로 다 시행하자는 건 아니다. 아이를 공동으로 키울 여건이 되는 곳, 그런 일을 해보겠다는 부모들이 있고 그걸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진 곳부터 시작하자는 얘기다.
돌봄 노동의 사회화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이를 그저 서비스로 보거나 시설화하려는 것이다. 돌봄은 소통과 교감이 있어야 한다. 양육은 물건을 생산하는 것과는 다르다.
-- 앞으로 가족 공동체는 어떻게 될까.
▲가족의 분화는 가속화할 것이다. 가족끼리 부양하지 못하는데 같이 살 수는 없다. 가족이라는 제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정말 친밀한 사람들이 서로 도우면서 같이 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의식주를 행복하게 꾸려가는 형태면 된다.
그동안 돌봄 노동을 제공해온 여성들이 일터로 다 내몰리고 있다. 이런 체제에서는 여성에게 더는 여력이 없다. 보이지 않는 가슴, 돌봄의 영역을 어떻게 되살릴 것이냐. 남성도 그것을 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게 일본에서 나타나는 '무연사회'로 가는 것이다. 모두가 1인 가구가 돼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사회가 가장 위험하다.
가족 붕괴는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결국, 더불어 살려는 마음을 가진 시민이 함께, 새로운 공공을 만들며 풀어야 할 문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돈 없이도 서로 도우며 즐겁게 살 수 있는 관계, 상부상조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생겨나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여서 자기 시간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회를 더 낫게 하는 활동을 한다고 믿는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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