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사건과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지금으로부터 40여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의 발단은 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단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다 발각되었던, 어찌 보면 그것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작단이 백악관과 관련이 있음이 드러나고 닉슨 대통령조차 그 진상을 무마하려 했던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사건의 이 같은 확대는 결국 의회에서 탄핵을 면치 못하게 된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새삼스레 이 자리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들춰내 이야기하는 것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생각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기관이 자주 선거에 개입했던 우리의 과거 경험 때문에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은 의례히 있을 수 있는 선거 후유증의 하나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도 그 출발은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실은 매우 중대한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는 사안이 아닌가 한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4일 검찰은 국정원 대선 개입 시간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이 사건이 간단치 않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우선 수사 결과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0년 지방선거로부터 지난 해 대선에 이르기까지 국내 정치와 각종 선거에 개입한 사실, 그리고 이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이 온라인에 정치 및 선거 관련의 다수 글들을 게시하거나 다른 게시글에 찬반 클릭을 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수사 결과는 국정원이 국정원장의 지시 아래 조직적으로 국내 정치와 선거에 개입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대선 직전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댓글 사건이 발생했을 시 이에 대해 경찰이 발표했던 중간수사결과 또한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즉 당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대의 분석관들은 김씨의 노트북에서 불법행위의 단서를 찾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청장은 그것을 은폐토록 지시했고, 100여 쪽에 달하는 분석결과 자료 역시 모두 폐기되었다는 것을 검찰 수사가 밝혀낸 것이다. 이처럼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음직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대통령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중대한 은폐 사건이 경찰에 의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 의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뒤늦게 이루어진 수사도 지체되었을 뿐 아니라 사건의 진상을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사실상의 수사권을 행사하며 사태를 지연시켰다는 점이나, 사건의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해 구속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이 바로 그러한 의심을 증대시켜주고 있다.

더구나 검찰 수사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배후에 대해서는 어떤 사실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원세훈 전 원장이나 김용판 전 청장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판단이나 결정으로 선거에 개입하거나 사건을 조작할 이유는 거의 없다.

그럴 경우 그들이 얻을 이익에 비해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의 배후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그 점에 대해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사법부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해결에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아닌가 한다. 그들이 분명한 태도로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했을 때 그 파장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 사건의 진상에 침묵하고자 했을 때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이 마냥 확산돼 나갔을 때, 그것은 한국판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국정조사를 포함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정해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