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논란 부른 NBA 결승전을 지켜보며

마이애미 히트의 극적인 역전 우승으로 미국 프로농구(NBA)가 뜨거웠던 2012~2013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이번 NBA 결승 시리즈에서는 이들 스타의 활약보다 멕시코계 한 소년의 미국 국가 열창이 더 큰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그가 미국 사회에 불러일으킨 논란은 글로벌시대를 맞아 본격적인 다인종 다문화 환경에 접어든 우리에게도 풀어가야 할 과제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마이애미에서 1승 1패의 전적을 안고 홈코트로 돌아온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지난 11일 AT&T센터에서의 3차전에 앞서 올해 열한 살의 멕시코계 소년 세바스티안 델라 크루스(Sebastien de la Cruz)에게 국가를 부르도록 했습니다.

“성조기는 지금도 휘날리고 있는가? 자유의 땅, 용사들의 고향에!(O say, does that star-spangled banner yet wave O’er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

멕시코의 전통적인 악단 마리아치 복장을 차려입은 세바스티안의 열창이 끝나는 순간 경기장은 요란한 함성과 박수소리로 진동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이 TV로 생중계되면서 난데없는 인종 논란이 미국 전역을 뒤덮었습니다. “이 아이는 멕시코인이다. 그가 어떻게 미국 국가를 부를 수 있는가?” “밀입국자 꼬마가 국가를 부르다니.” “그 아이가 국가를 부르는 것은 불법행위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는 어린 소년의 혈통과 국적을 문제 삼아 인정사정없는 비하 발언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다음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담담히 말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절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내 아버지는 미 해군에서 복무했고, 나는 샌안토니오에서 나고 자란 스퍼스 팬이다.” 소년의 아버지(Juan)는 해군에서 오래 복무했고, 어머니(Stacy)는 체육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지난해 NBC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America’s Got Talent‘에서 그의 재능을 인정받아 올 4월 샌안토니오 교향악단과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SNS에서의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샌안토니오 스퍼스 구단은 13일 4차전에 다시 한 번 세바스티안을 초청했습니다. 줄리안 카스트로(Julian Castro) 시장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 앞에서 ‘천재 소년’을 소개한다며 구단의 지지에 가세했습니다. 소년은 앙코르 공연에서도 이틀 전과 똑같은 복장으로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관중석에서는 우레 같은 함성과 기립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우승을 다투는 라이벌이지만 홈팀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 원정팀 마이애미 히트의 에릭 스폴스트라 감독 모두 코트 중앙으로 걸어 나와 소년에게 격려와 칭찬의 악수를 건넸습니다.

미국은 흔히 이민자들의 나라로 불립니다. 일찍이 유럽에서 시작해 아시아, 남미를 포함한 여러 대륙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모여든 수많은 인종들이 오늘의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만들어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샌안토니오 농구 경기장에서는 그런 나라에도 어쩔 수 없이 인종과 풍습에 관한 편견과 갈등이 존재함을 재확인한 셈입니다.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오늘날까지도 그런 편견과 대립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사회 문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최근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150만 명을 돌파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 100명 가운데 3명이 이주 노동자, 결혼 이민자, 귀화자 등 피가 다른 외래 인종이라는 얘기입니다.

코 크고 눈 파란 외국인을 보기만 해도 신기해하던 나라가 더 이상 외모의 차이를 따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외모는 물론 언어, 관습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와 포용으로 감싸 안음으로써 편견과 갈등의 위험을 예방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부 방송사의 다문화 가정 관련 프로나 외국인 출연 프로들은 의미 있는 시도로 보입니다.

시청률을 의식해 스토리 전개가 너무 감상적이라거나 출연진 구성이 외모 편향적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면적인 차이 속에 인간적인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데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우리도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런 인종과 문화의 융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더 큰 발전을 찾아야 하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방석순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