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귀태 해프닝’, 역겨울 뿐이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귀태’ 발언에 대해 사과하며 원내 대변인직을 전격 사퇴했다. 연좌제까지 적용된 ‘귀태’라는 단어의 사용이 부적절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비슷한 의견을 개진한 인물은 상당수에 이른다.

일본식 단어 하나가 대한민국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귀태(鬼胎).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가 만들어낸 조어로 재일 한국인 학자 강상중 교수가 제국주의를 비판한 저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란 책에 등장시킨 단어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국회 정론관에서 11일 현안 브리핑 도중에 한 말이다. “작년에 나온 책 중의 하나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의 표현 중의 하나가 귀태(鬼胎)라는 표현이 있다. 귀신 귀(鬼) 자에다, 태아 태(胎)자를 써서, 그 뜻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 당시 만주국의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국에 세운 괴뢰국에,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아베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이다.”

문제는 홍익표 의원의 잘못된 인식이다. 상식과 윤리, 도덕과 철학을 넘어 ‘귀태’라는 단어가 내포한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사람’은 없다. 어떤 탄생도 사후적 결과를 역으로 적용해 폄하되거나 배제하면 안 된다. 인류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란 없으며, 그것이 모든 인권과 존엄성의 출발점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인 히틀러조차도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이 아니라, 태어났지만 그런 최악의 인간이 최고 지도자에 올라 인류 역사상 최고의 비극을 저지르지 못하게 한 이유와 제도적 결함, 공조자에 관한 책임 추궁, 재발 방지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법과 제도의 정비, 역사적 교훈에 대한 교육 등을 얘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만주국에서 한민족과 중국인을 학살한 박정희와 기시처럼 온갖 악행을 저지른 독재자와 군국주의자의 후예인 박근혜와 아베가 그들처럼 ‘귀태’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권한 남용을 감시하고 비판하면서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정치인이자 여권 관계의 실체를 밝혀야 하는 시점에서 홍익표 의원이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귀태’ 논란을 자처한 것은 무능한 민주당에 대한 불안감의 발로일 수도 있고, 이렇게라도 해야만 비슷한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귀태’는 배제와 박멸의 정치를 하겠다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야당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현안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꼭 그런 표현을 썼어야 했을까. 국정원 국정조사와 NLL 논란으로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홍 원내대변인의 ‘귀태 발언’에 지나친 면이 있다고 치더라도 이에 대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반응은 정도를 넘어 막가자는 식이다. 새누리당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퍼부은 망언과 망동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정치란 법과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합리적인 경쟁의 관계이지, 우파 진영이 전매특허처럼 사용한 빨갱이나 종북 타령처럼 박멸과 배제를 유발하는 관계는 아니다. 박멸과 배제의 정치는 모든 악덕의 근원이자 독재로 가는 출발점이다. 이번 기회에 민주당이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정질서를 짓밟은 것도 모자라, NLL 논란을 극대화해 배제와 박멸의 도그마인 멸공과 마녀사냥을 또다시 들고 나온 여권 유착과 맞서려면 치밀할 정도로 완벽한 전술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추호의 빈틈도 보여서는 안 되며, 꼬투리가 잡힐 수 있는 자극적 언어의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체제이기 때문에 어떤 단어의 사용도 못 할 것은 없지만, 거대 야당의 대변인이 쓸 수 있는 단어는 한정돼 있다. 민주당의 언어가 새누리당의 언어와 다를 것이 없으면 누가 민주당에 희망을 둘 수 있겠는가. 민주당이 이런 단어의 사용을 통해 단순히 새누리당과의 싸움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면 결코 원하는 것을 얻지도 못할 것이며, 민주당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분발을 촉구하며, 최상의 전략과 전술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지키고 원상으로 회복시키려는 국민과 함께 움직일 때, 그들의 순수한 분노와 정의에 대한 갈증을 이끌어갈 수 있을 때 민주당은 다시 집권의 가능성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