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지방 정책에 절망한다

드디어 지난 7월 18일 박근혜 정부가 지역발전 정책을 발표했다. 일단, 좋은 단어들이 많이 나열되어있다. 삶의 질 향상, 국민 행복, 지역 희망 등을 비전으로 하여 일자리를 늘리고, 지역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모든 지역에 균등한 기회를 주며, 기업의 지방이전을 촉진하며, 지역대학을 특성화하고, 지역 문화를 융성시키며, 지역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며, 균형발전정책은 지속하겠다는 것이 전체적 얼개이다.

하지만 상세히 들여다보면 지역발전위원회(국가균형발전위원회 후신)에서 새롭게 창안한 정책은 단 하나도 없다. 온갖 듣기 좋은 말만 나열하고 다른 부처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을 다시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소프트웨어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래 정부의 일은 지방의 하드웨어 설치이지 소프트웨어 마련이 아니다. 자기가 운영할 것도 아닌데 왜 지방의 소프트웨어를 걱정하는가. 이런 식으로 가면 지역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각 지역에 기회를 균등하게 준다는 말은 호남에게는 무시무시한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또 하나 지방자치를 강조하는 것도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지난 5월 28일 지방분권특별법을 유명무실화하는 법률개정이 있었다. 지방분권과 행정구역개편법을 합하여 하나로 만들면서 과거 지방분권 관련 위원회와 행정구역개편위원회를 합하여 지방자치발전위원회로 퇴화시켜 버렸다.

지방자치를 위한다면서 분권을 초라하게 위축시켜 버린 것이다. 원래 정부는 분권에 앞장서고 자치는 지역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중앙정부로부터 분권이 되어야 그 권한을 가지고 자치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새 정부의 정책 수립을 하려면 어떤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장애요인을 찾아 해결하는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지방발전 정책도 효과를 막는 장애물 극복책이어야 한다. 지방발전에 가장 도움이 되는 정책은 기업과 대학의 수도권 진입 규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수도권 규제는 대부분 없애버렸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철폐 중이다. 그렇다면 이게 뭔가. 지방을 죽이는 근본적인 일을 하고 있으면서 지방을 살리겠다는 시늉만 내고 있는 것 아닌가. 뼈를 부러트리면서 얼마나 아프냐면서 빨간 소독약이나 발라주는 행위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아직도 미심쩍으면 몇 가지 더 말하겠다. 지역 행복 생활권 계획에서 행복은 이 정부의 수식어에 불과하다. 주민을 위해 상시적으로 해야 하는 행정업무가 국민행복 증대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엄마가 밥해 주는 일을 자녀들의 행복프로그램이라고 말하면 되나?

원 세상에 난방 부담 완화, 슬레이트 지붕 개량, 침수방지가 균형발전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건 어떤 행정부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이걸 지방발전 정책이라고 내놓는다? 오로지 허탈할 뿐이다.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정책을 보면 과연 이들이 무슨 고민을 하기는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이 와야 한다는 진단이야 맞다. 하지만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투자를 보조하고, 운전자금을 지원해주어 기업을 이전시키겠다고 한다. 이런 미봉책으로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해 오나? 지방기업의 수도권 탈출을 막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 부문을 보자. 농어촌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해서 지역발전을 추구하겠다는데, 그런 사람들이 농어촌 학교 통폐합은 그리 밀어붙이나? 지역대학 발전책으로는 특성화를 제시했는데 이것은 정부 생긴 이래로 추진해온 정책이다.

지금 지방대학이 특성화가 안 되어 있어서 학생이 안 오는가. 수도권 집중을 막는 정책이 없이는 백약이 무효인데, 수도권 집중은 부추기면서 지방대학 육성이 중요하다 말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그런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단 하나 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세종시와 혁신도시를 지속 추진하겠다는 것. 전전 정부의 정책의 일부를 지속하겠다는 게 새 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모두이다.

이럴 요량이라면 차라리 지역발전위원회를 해체하는 것이 낫다. 이 정도로 까지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전락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역을 위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지역을 위한다고 생색내는 수단으로 전락하였으니 정말 통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