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 수사팀장이 법무부 및 검찰 지휘 라인의 수사방해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은 전임 정권뿐만 아니라 현 정권인사들도 가담하는 은폐의혹사건으로 사건의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윤 팀장이 폭로한 내용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의 실체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윤 팀장의 외압폭로는 검찰이 국정원의 추가혐의를 밝혀내 공소장을 변경하는 데서 비롯됐다. 변경된 공소장 내용의 핵심은 국정원 불법선거개입사건은 일부 심리전단 직원의 ‘댓글’ 달기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충격적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해선 ‘후원방법까지 안내하는 등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했고, 반면 문재인·안철수 등 야당후보의 경우에는 “문재인의 주군이 김정일”이라거나 “안철수는 박쥐새끼”라는 등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내용으로 선거방해운동을 했다.

최근에는 군 사이버사령부 소속의 요원들 4명이 정치적인 글을 리트윗하거나 블로그에 올린 사실도 드러났다. 또한 국가보훈처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강연회를 공공연히 진행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앞으로 더 엄정한 수사를 통해 더 밝혀내야겠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은 대선을 앞두고 국가안보를 위해 운영돼야할 국가조직들이 집권세력의 안위를 위해 선거에 동원된 ‘관권 선거’의 증거들이다.
새누리당은 애초부터 ‘댓글’ 몇 개로 대선 결과가 바뀌었겠느냐며 사건의 의미를 축소했다. 박 대통령도 본인은 대선과정에서 국정원 덕 본 것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런 말로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검찰의 공소장 변경으로 불법의 정도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달라졌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국정원의 ‘덕’을 볼 정도로 개입의 정도가 컸다는 점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또한 수사팀장의 외압 폭로로 인해 그동안 주장했던 ‘현정권 무관론’ 또한 설득력을 잃게 됐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최근 검찰 국감에서 윤 지청장을 ‘조폭’이니 ‘시정잡배니 하며 인신공격을 하는가 하면, 심지어 “국정원에서 댓글 달면 안 되느냐”는 적반하장의 질문까지 하고 나섰다.

집권당 인사들의 뻔뻔하리만큼 당당한 이런 태도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우리는 그 주요한 이유를 언론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현 정권의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국면마다 일시적인 위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언론을 통해 국민 여론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이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와 MBC가 그동안 보여준 보도 태도를 보면 잘 확인할 수 있다. 두 공영방송사의 수뇌부들은 현 정권에 목이 매인 처지다. KBS는 수신료와 지배구조개선 문제로, MBC는 사장 연임 문제가 걸려있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도 비슷한 이유로 코가 꿰어있다.

내년에 ‘종편 재승인’을 앞두고 있다. 4개 중에 한두 개는 떨어뜨린다는 얘기를 방통위 여당 측 인사들이 하고 있지 않은가. 뉴스와 여론의 주요창구가 되고 있는 주요 포털들도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대한민국사회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언론의 위기가 동시에 찾아왔다. 지금 언론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상명하복을 조직문화로 가진 ‘검사’도 권력의 외압에 맞서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냈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직업인 언론인이 말하고 글 쓰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권력에 길들지 않을 언론인들의 용기가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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