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의 상임의장이 강대국들의 견제 속에 '얼굴 마담'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대두하는 가운데 인력과 예산을 주무르며 EU 대외관계를 총책임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외교대표가 실권을 갖는 자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실질적 권한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선이 'EU 대통령'으로도 불리는 정상회의 상임의장에 쏠려 있어 지금까지 외교대표는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토니 블레어 전(前) 영국 총리가 상임의장 후보에서 사실상 낙마하면서 데이비드 밀리밴드 현 영국 외무장관이 초대 외교대표 후보로 급부상하는 양상이다.
블레어가 상임의장 후보로 거론되던 당시 밀리밴드는 "나는 그 자리(외교대표)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스스로 논의에서 비켜섰지만 블레어가 낙마, 상황이 바뀐 지금은 유력 외교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밀리밴드가 유력 외교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데는 좌우 정파의 타협이라는 유럽의 전통적인 정치 문화도 한몫을 한다.
블레어 대신 정상회의 상임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인 얀 페터르 발케넨더 네덜란드 총리나 헤르만 반 롬푸이 벨기에 총리 모두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 성향의 인사들이다.
리스본조약으로 신설되는 두 개의 요직을 우파든 좌파든 어느 한 쪽이 독점하기 어려운 게 유럽의 전통적 정치 문화이자 현재 EU의 정치 지형도다.
따라서 발케넨더든 롬푸이든, 아니면 제3의 후보든 최대 정파인 중도우파가 정상회의 상임의장 자리를 차지할 게 확실시되기 때문에 외교대표는 좌파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영국 노동당의 젊은 기수이자 외교력에 높은 평가를 받는 밀리밴드가 초대 외교대표로 유력시된다는 게 브뤼셀 외교가의 관측이다.
독일 뉴스통신 dpa는 5일 EU 주재 폴란드 대사인 얀 톰빈스키를 인용해 "블레어가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될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외교가에서는 외교대표 후보로 밀리밴드의 이름이 가장 빈번히 거론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밀리밴드 이외에 마시모 달레마 전 이탈리아 총리와 카를 빌트 스웨덴 외무장관 등도 외교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EU 외교대표는 이사회 사무총장을 겸하던 종전의 외교정책 대표와 집행위원회의 대외관계 집행위원을 통합한 자리로 EU의 외교 예산과 인력을 주무르게 되며 외무장관 회의를 주재, 사실상 27개 회원국 공동체의 외교정책을 입안ㆍ집행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한편, 밀리밴드가 집행위 부위원장을 겸하는 외교대표에 낙점을 받으면 '1회원국, 1집행위원' 원칙에 따라 캐서린 애슈턴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영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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