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저 역시 영화 프로듀서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어요. 해보니 감독은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고 프로듀서는 전적으로 감독을 받쳐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제가 맏딸이라 그런지 원래 조정하는 일을 잘하긴 했어요."


독일 유학생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자라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영화 제작자인 이인아(42) 프로듀서(PD)는 일상적인 대화는 꽤 유창한 한국말로 했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영어로 해야 편하다고 했다.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경쟁부문 심사위원 자격으로 방한한 그를 5일 오후 영화제가 열리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만났다.
그레이스 리 감독과 '리리필름'을 만들고 '아메리칸 좀비'를 제작했던 이 PD는 2년 전 독일의 영화제작사인 그린스카이필름의 미국지사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초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데뷔작 상' 심사위원에도 참여했던 그는 심사위원 역할이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제작자로 영화제에 가면 영화를 볼 기회가 없거든요. 영화가 좋아 영화 일을 하게 됐는데 주로 비행기 안에서 틀어주는 재미없는 영화만 보게 되는 거예요. 영화제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그는 "싫어하는 영화를 봐도 배울 게 많다"며 "특히 신인 감독을 발굴해 작업하는 나에게는 단편 영화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의 특별 프로그램 '테마단편전 Ⅱ:8'의 제작자 중 한 사람으로서 Q&A를 통해 관객과도 만날 예정이다.
'8'은 유엔이 2015년까지 세계적인 빈곤을 반으로 줄이기 위해 191개 국가의 정부가 함께 해결하기로 한 8가지 밀레니엄 개발 목표를 주제로 8명의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로, 이 PD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빔 벤더스 감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 PD는 "벤더스 감독이 맡은 프로젝트는 '개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파트너십을 발전시키자'는 내용으로 나머지 7가지 주제를 포괄하는 추상적인 내용이었다"며 관련된 일화를 전해주기도 했다.
"주제가 하도 추상적이니까 벤더스 감독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2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가 데드라인이었는데 하얏트 호텔에서 이 영화의 트리트먼트를 작성했었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산하 방송국의 통역 자원봉사자로 일한 인연으로 방송국에서 PD로 일하던 그는 좋아하는 영화를 하고 싶어 미국으로 떠나 독일 감독들의 어시스턴트를 시작했다.
"벤더스 감독의 경우 어시스턴트를 구한다고 해서 소개를 받고 인터뷰를 하러 편집실로 갔어요.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편집하고 계셨죠. 나름대로 여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뒤에 있는 소파에 앉아 '네',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 한두 개를 받고 끝났어요. 떨어졌나보다 생각했는데 다음 날 오라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이렇게 시작된 거장 감독과의 인연으로 이 PD는 벤더스 감독이 만든 제작사의 제작 책임자를 지냈고, 2005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돈 컴 노킹'과 2004년 베니스 영화제 진출작 '랜드 오브 플렌티'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현재는 벤더스 감독의 차기작 '인 더 미소 수프'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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