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하루 앞둔 포항 스틸러스와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의 감독과 선수가 출사표를 밝혔던 6일 밤 일본 도쿄의 국립경기장 1층 기자회견장.
포항의 한국계 일본인 수비수 오카야마 가즈나리(31)는 기자회견이 끝나갈 무렵 마이크를 잡더니 이곳에 참석한 20여명의 일본 기자들에게 포항 응원을 당부했다.
일본은 나고야 그램퍼스가 준결승에서 알 이티하드에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안방에서 치러질 외국팀 간 결승을 지켜봐야 하는 신세다.
이런 중에 오카야마는 결승 진출팀 선수 중 유일한 일본인이다. 일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집중되는 이유다. 포항도 이를 의식했는지 기자회견에 간판선수 대신 오카야마를 내보냈다.
재일교포 3세로 일본에서 나고 자란 오카야마는 1997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일본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를 시작으로 세레소 오사카, 가와사키, 아비스파 후쿠오카, 가시와 레이솔, 베갈타 센다이 등을 전전하며 주로 2군에서 활약했다. 일본에서도 그리 널리 알려진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나이가 많은 데다 센다이 소속이던 지난 2008-2009시즌에는 목과 엉덩이 부상으로 끝내 시즌 후 퇴출을 당했다. 더는 축구 선수로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센다이가 오카야마를 사실상 용도폐기한 셈이다.
그는 축구 선수로서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포항에 자신의 경기 장면을 담은 DVD를 보내 입단 의사를 타진했다.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 감독은 수비수가 골을 넣는 장면 위주로 담은 DVD를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아 오카야마를 구단별로 1명씩 배당되는 `아시아쿼터'로 낙점했다.
J-리그에서 버림받았던 오카야마가 한국 K-리그에서 새로운 축구 인생을 열어가게 된 것이다.
오카야마는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기자회견에서 "12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던 J-리그에서 더는 뛸 수 없게 됐지만 포항이 나를 영입해줬다. 축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 이 자리에 선 것만으로도 꿈만 같다. 우승하면 또 하나의 꿈이 이뤄진다. 내 인생에 큰 의미가 있는 경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7년 프로축구 유공과 실업축구 국민은행 등의 테스트를 받았으나 입단에 실패했던 그는 12년이 지나서야 포항 유니폼을 입고 K-리거가 됐고 마침내 `꿈의 무대'라는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팀 일원으로 일본으로 금의환향했다.
그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 9경기에서 1골을 넣은 백업 수비수여서 결승 무대에서 뛸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전날 공식 훈련 때 노란 조끼를 입었던 베스트 11에도 들지 못했다. 하지만 새롭게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준 포항 선수들과 함께 도쿄 국립경기장을 찾은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하다.
그는 `약속의 장소에 돌아오기 위한 공백의 6개월'이라는 인터뷰 내용이 담긴 자료를 일본 기자들에게 돌렸다. 그가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일본 최고의 선수들도 이루지 못한 우승 감격을 누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chil881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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