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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인돕기운동본부 이광길 대표 | ||
‘고려인’ 러시아어로는 ‘까레이츠(한국인)’. 고려인은 1860년대 함경도 주민들이 대기근을 겪으며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간 것으로 시작된다. 해외이주 역사는 한의 역사라고 불릴 만큼 설움을 겪어야 할 일이 많다. 배가 고파서 국경을 넘어 연해주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일본의 강점 하에 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도 했다. 청산리 전투나 봉오동 전투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거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연해주에 있던 고려인들의 연합된 투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에 의해 20여만 고려인들은 짐승들이 타는 화물기차에 실려 6,000km 떨어진 낯설고 물설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옮겨졌다. 시베리아 추운 겨울 10월에 시작된 강제이주는 이듬해인 1938년 4월에 끝날 때까지 약 3만여 명이 강제이주 과정에서 숨질 정도로 처참했다. 중앙아시아에서 토굴에 살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우리 동포 고려인들은 1953년 스탈린 사후부터 억척같이 일해서 1991년 소비에트가 무너지기 전에는 중앙아시아 5개 국가에서 나름대로 정착하여 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무너진 후 “너희는 너희나라 러시아로 돌아가라”는 중앙아시아 현지 국가민족들의 민족감정에 의해 수만명이 헐값에 재산을 팔아치우고 다시 강제 이주된 원동 러시아 연해주로 가는 기차 칸에 몸을 실어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연해주로 돌아왔지만 반겨주는 사람도 국가도 없었다. 일제치하 때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던 독립투사들의 후손이지만 결국 고려인들은 국적도 언어도 잃어버린 유랑민족이 되었다.
지난달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기념해 고려인 124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제는 한국인의 모습이 많이 없어졌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할아버지의 나라, 조국에 대한 그리움에 감격하는 모습들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이 가운데는 고려인돕기운동본부 이광길 대표가 있었다. 모두가 고려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해서 말할 때 이 대표는 고려인들은 남북화합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며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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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애를 썼고 지금은 평화통일의 연결고리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나아가 통일 후에는 식량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다고 내다보는 것이다.
이 대표는 “소비에트 통치 70년 동안에 1200여명의 노력영웅 중에서 고려인이 680여명이 나왔으며 이는 식량절대 부족국가인 대한민국의 식량안보를 해결할 수 있는 소중한 민족자산”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한국 방문 후 고려인들의 반응에 대해선 “조상 땅을 밟아 봤다는 자체로 꿈만 같고 소원을 풀었다고 하더라. 러시아에서는 한국 사람이나 고려인이나 ‘까레이츠’라고 부른다. 단지 우리만 구별하고 있을 뿐”이라며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표가 고려인들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연해주에서다. 그는 해외농업을 시작하면서 연해주를 비롯한 구 러시아 영역에 55만 명의 우리 동포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또한 이들이 독립투사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대표는 역사를 잃지 않기 위해 고려인돕기운동본부를 설립하고 한글교육을 위한 자원봉사자 파견과 문화교류지원 등에 힘썼다. 이 대표에 따르면 1930년대 일제 폭압이 극에 달했을 때 독립군의 본거지인 연해주에는 한글학교가 380여개에 달했고 8개의 일간지 한글신문, 월간 한글잡지도 7종이나 발행이 됐지만 강제이주로 인해 한글학교가 사라지면서 고려인들은 언어를 잃어버리게 됐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려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고려시대 사람’인줄 아는 사람이 많았다. 독립군의 대부 격인 최재형 선생이나 김경천 장군, 그리고 안중근 의사와 함께 단지 동맹을 한 12명의 독립군을 비롯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독립투사의 후손들이 고려인이지만 우리는 너무 고려인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CIS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민족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 가운데 상당수의 고려인들을 ‘러시아 인’이라며 쫓아냈다고 설명했다. 연해주로 돌아온 고려인들은 여권이 발급되지 않아 국적이 없는 채 살아가야 하니 아이들 입학도 못하고 아파도 병원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이 지극히 어려웠다. 고려인들은 ‘한국은 올림픽도 열고 잘 산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내버려 두느냐?’고 원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데, 정부의 지원은 없었을까?
이 대표는 “당시 정부는 고려인들을 독립군의 후손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는 민족으로 여겼으며 국내 분위기도 고려인에 대해서는 중국 조선족에 비해서 너무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중국 조선족은 한국말을 다 할 줄 아는데 비해서 고려인들은 노인들이나 겨우 한국말을 할 뿐 젊은 사람들은 거의 모국어를 다 잊어버렸기에 접근성이 낮았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고려인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지원은 미미했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지난 2007년 방문취업비자제도가 도입되면서 조국 방문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규정으로 미국이나 일본 재외동포들처럼 자유로운 방문이나 취업에 제한이 있다.
올해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한국 방문에 이어 또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평양, 서울, 부산으로 이어지는 1만5000km의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이 다. 지난 7일부터 8월25일까지 50일간 진행되는 대장정에서 고려인들은 광복절에 맞춰 군사선(MDL)을 넘는다.
이 대표는 “행사 자체만으로 고려인의 존재와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위상에 대해 알릴 수 있지 않겠나. 쫓겨났던 길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사무실 곳곳에는 고려인들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과거 강제이주로 버려졌던 카자흐스탄의 허허벌판과 농업으로 정착해나가는 모습, 비자문제와 교육, 문화 전반에 걸쳐 고려인들을 도와왔던 이 대표의 마음이 인터뷰 내내 묻어나왔다. 국가도 돌보지 않던 연해주 땅의 독립투사의 후손들과 동고동락하며 결국 한국 방문까지 성사시키며 고려인의 소원을 풀어준 이 대표. 통일로 가는 시대에 발맞춰 고려인의 역할을 제시하는 이 대표는 진정한 애국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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