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점포 3천개 성업..경기침체로 활력 잃어

(부다페스트=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쾨바냐이가(街) 21~29번지.
대로를 사이에 두고 작은 점포들이 입점해 있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맞은 편엔 '요제프바로시 피어츠(요제프바로시 시장)'와 '四虎市場(사호시장)'이라는 간판을 내건 재래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사호시장은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이른바 `중국 시장' 4개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시장이다. `중국시장'은 중국산을 비롯해 값싼 수입물품과 짝퉁들을 팔고 상점주들도 대부분 중국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14일 오후 요제프바로시 피어츠에 들어서자 1평 남짓한 크기의 수많은 점포들이 너덧 줄로 200ｍ가량 늘어서 있었다. 의류, 신발, 장난감, 화장품, 여성용 액세서리, 소형 전자기기 등을 파는 점포들은 통로까지 물건을 진열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재래시장을 보는 듯했다.
모처럼 맑은 날씨였지만 좁은 통로 사이를 지나며 물건들을 둘러보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고 시장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딸아이의 인형을 고르는 부부, 화장품과 액세서리를 고르는 젊은 여성들, 커다란 비닐봉지에 옷 꾸러미를 챙기는 일행, 청바지 코너에서 옷을 살펴보는 중년 여성 등 손님들 대부분은 헝가리인들이었다.
물론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들은 대부분 중국인이었고 이곳에서 파는 물건들도 대부분 중국산이었다. 간혹 '메이드 인 터키' 꼬리표가 달린 옷들도 눈에 띄었다.
시장 상인들은 헝가리 서민들이 주로 찾는다고 한다.
청바지 가게를 하는 헝가리인 사키 프레이둔 씨는 "가난한 사람들이 여기를 찾는다"고 말한 뒤 청바지 하나를 가리키며 "시내 상점에선 6천포린트(한화 3만9천원)에 판다. 여기선 2천포린트에 판다. 같은 물건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서민들 형편에 시내 상점에서 이런 물건을 사는 게 쉽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시장을 종종 찾는다는 컴퓨터 엔지니어인 21세의 헝가리 청년은 "(중국산) 낮은 품질의 물건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꽤 품질 좋은 '짝퉁'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입구에 있던 소형 전자기기 가게에는 애플 '아이폰'과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중국산 '짝퉁' 아이폰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탓에 국내산 공산품이 적은 헝가리에서 이러한 중국시장이 서민들에게 품질은 떨어지지만, 값은 싼 생활필수품을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헝가리 서민 생활을 뒷받침해 왔다고도 볼 수 있는 중국시장도 헝가리의 오랜 경기침체와 더불어 활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프레이둔 씨는 "2002년 여기에 가게를 얻었을 때만 해도 점포 수가 3천여개에 달했었다. 지금은 1천개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가게 월세는 오르기만 했다"고 말했다.
10년째 옷가게를 하고 있다는 몽골 출신의 문크투야(35.여) 씨는 "돈을 많이 벌었을 때에는 몽골에도 집을 사고 헝가리에서도 집을 샀을 정도였다. 지난 10년 동안 장사가 지금처럼 안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예전엔 헝가리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세르비아 등에서 도매로 사러 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전했다.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세르비아 등 역시 생필품을 만드는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국가들이다.
대로 건너편 건물들에도 비어 있는 가게들이 많았고 아예 건물 1개 동 전체를 임대한다는 광고도 걸려 있었다.
냉전 해체 후 체제전환과 경제발전에 가장 앞섰던 헝가리 경제의 침체가 오래 가자, 중국시장 마저 쇠락해 가며 부다페스트 서민들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듯했다.
ju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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